첫날 거부 당했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오르비에토 농장의 '마이'가 직접 소개해준,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멤버 로렌조를 통해 '환대'를 받으며 방문하게 됐다. 이제는 '믿을 만한 팀이 된 우리'에게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채, 지난번의 까칠했던 관리인은 사라지고 친절한 안내자 '마리오'를 마주하게 되었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의미부터 정말 상세히 알려주던 마리오. 지인찬스 감사합니다.....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이곳은 과거 군사요새(1편 기억나는가. '강한 요새!!')였으나, 1986년 이래로 시민들이 점거하여 자체관리하는 소셜센터가 됐다. 공동 결정과 윤리에 동의하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연합했고, 이에 기초하여 자체적으로 공간을 구성하거나 공유하며 그 활동을 실험하는 공간이다. 즉, 시민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구성하는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마리오가 직접 요새를 안내해줬다!!

 

"궁금증"

우리는 국가 소유의 땅을 점거하고 30년 넘는 시간동안 자율적으로 운영해오며 소셜센터로서 시민들과 이 공간의 경험을 공유해온 과정이 궁금했다. 어떤 배경과 맥락 속에서 그리고 어떤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또 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실제로 버려지거나 방치되는 공간과 사람들에게 부족하고 필요한 공간은 어떻게 상응할 수 있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문제와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사점 역시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에게 먼저 우리가 준비해간 '훌라' 라는 팀 소개와 이러한 궁금증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버전을 메일로 보냈었는데, 미리 숙지한 그는 우리에게도 신선한 궁금증을 많이 갖게 된 듯 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물론, 우리가 연구자이자 아티스트(!)로서 이 공간들이 흥미로울 것이라며 요새의 '지하공간'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큰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계단이 있었고, 벽면 가득한 그래피티와, 공간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겉으로 볼 땐 요새의 특성이 잘 안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숨겨진 공간이 있었다!! 요새로 쓰일 당시, '마굿간'으로 사용했던 지하공간이라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인터뷰와 함께 사진으로 풀어보도록 하겠다! :D

(인터뷰 전문을 옮기니, 관심있는 분들은 꼼꼼하게 함께 읽어나가면 좋겠다)

 


 

"인터뷰: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의 관리자 마리오"

Q. 이곳의 역사에 대해 좀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A. 이곳은 9세기에 지어진 군사요새 중 하나이다. 당시 이탈리아 왕이, 프랑스 사람들이 로마를 침입할 것을 두려워해서 지어졌다.

20-30년 후에는 전쟁의 방식이 달라졌다. 비행공습이라던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쟁의 형태가 생겨던 세계대전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면서 이 요새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이러한 요새들이 갑자기 버려지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이곳은 마니페스토를 위해 사용되기도 했지만 2차세계 대전 이후에는 아예 버려졌다.

45년 경에는 독일 나찌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미국에 의해 격투당하면서 그들은 동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이곳은 로마의 동쪽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당시 나찌가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들이 격퇴당한 후 이곳은 다시 버려졌고 약 50년 전쯤 우리네 할머니들 세대에게 이곳은 그저 거대한 방치상태의 성으로 인지되고 있었다.

이것이 이곳의 역사적인 이야기이다.

'우리'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이야기는 198651일에 시작한다. 그때 이곳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는 1982~6년 사이에 여러 곳에서 점거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노동자계층 중에서도 극빈층들은 집 없는 사람들이 많았고, 파시즘 국가가 만들어지면서 실직자가 된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오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펑크족들도 포함해서.

 

 

벽면에 있던 밖으로 난 창살은 요새로의 침입에 대비해 적을 쏘기 위한 틈이라고 했다

 

Q. 그들이 이곳을 점거한 배경은 무엇인가?

A. 방치된 공간을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해방하고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

 

 

Q. 이 공간의 특징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A. 이곳은 요새로 지어졌다보니 바깥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공간이 있다. 성벽을 따라 위쪽은 현재도 몇몇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적 공간으로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각각의 방들은 여러 용도로 사용자에 따라 각종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양옆에 날개처럼 큰 뜰이 있어서 이곳에서 대규모 파티나 콘서트, 회합 등을 열곤 한다.

 

지하 부분은 100 개의 세포라는 의미에서 "센토 첼리 (cento celli)"로 불리는데, 알다시피 로마에는 수많은 지하시스템이 발달했었다. 요새로 사용될 당시 군수품이 이곳에 저장되어 있었다. 1986년에 처음 이곳을 점거했을 때 이곳에서 상자, 시체, 세탁기 등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된 나치 유니폼과 많은 군수품들이 있었다. 이것은 안뜰에서 거대한 모닥불 땔깜이 되었다. 당시 쓰레기로 가득차 있는 모든 방들을 청소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의 모든 장소, 특히 지하 물건을 탐험하진 않았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작업한 작가의 작품을 설명해줬다.

아래층(이곳은 입구가 요새라 입구가 2층 레벨이고 그 아래 1층 레벨이 숨겨져 있다)은 예전에 말을 두던 곳이다. 인터뷰 당시 이곳은 크랙페스티벌 기간이라 각 공간은 작업물로 칸칸이 채워져 있다. 크랙페스티벌의 경우 웹사이트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는데, 이 방이 다 찰때까지 신청자를 받는 방식이다. 선정은 정치적 의제를 보고 채택한다. 공간마다 다른 아티스트가 작업하면서 계속 그 공간을 바꿔가는데 자유롭게 둔다.

 

 

 

Q. 이곳에서는 어떤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나?

A. 이 장소를 살아있게 위해 여러 가지 워크숍이나 활동을 한다. 음악을 가르치는 곳, 활을 만드는 곳, 공방, 체육관 등을 운영한다. 지금은 7월이라 대부분의 공간이 닫혀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 가지 워크숍들이 열린다. 펍이나 식당은 워크숍이나 콘서트 있을 때 열린다. 3월에 와인축제를 하거나 타투컨벤션, 만화나 실크스크린 미팅 등이 매년 벌어진다.

 

 

1층 레벨의 뜰에서 활쏘기를 하던 요새의 멤버

 

이곳은 90년대 레이브(Rave)의 성지이기도 했다. 많은 로마 스쿼트가 레이브 파티가 벌어졌다. 1990년대에 그들은 정원과 버려진 건물에서 레이브를 했다. 많은 공간들이 있지만 그 중에 작은 콘서트를 열 수 있는 실내공간도 있다. 이곳에서는 언더그라운드밴드, 펑크밴드 등 비주류 음악밴드들의 공연이 벌어진다.

이 날도 공연이 한창 준비 중이었다.

 

라이팅룸에서는 포스터나 현수막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실크스크린 작업과 핸드라이팅을 하며, 별도로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자전거 수리소가 있다. 바깥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돈 없이 자전거를 수리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있지만 자기 스스로 수리를 할 순 없다. 이 공간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안뜰에서 성벽까지 매우 넓은 공간은 야외로 곳곳에 많은 과실수가 있고, 우리는 양봉을 하고 채소밭도 가꾼다. 그리고 오늘도 콘서트가 열리며, 오는 이들을 위한 펍과 가게가 열린다

반문화, 펑크, 하위문화, 행동주의, 업사이클링, 정치적 예술, 페미니즘 문화 등이 이곳의 활동들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Q. 이 공간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는가?

A. 기부금을 받기도 하지만 왠만하면 우리가 자가수급하려고 한다. 워크숍이나 축제 파티 등을 열면서 어느정도 모은다. 이곳은 임대료는 없지만 약간의 전기나 수도 세금은 내고 있다.

 

 

Q. 이곳을 소셜센터라고 부르는데 이는 스쾃과는 어떻게 다른가?

A. 스쾃과 소셜센터는 다른 것이다. 스쾃공간을 지붕없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행위이다. 소셜센터커뮤니티에 그들이 갖고 있지 않은 커뮤니티 센터를 돌려주기 위한 장소이다. 이곳에는 이 공간을 살아있게 하기 위한 몇몇의 사람만 이 안에 살 뿐이다.

이곳은 소셜센터이다. 이것은 어셈블이 한 결정이었다. 매주 9시마다 어셈블리를 연다. 연합에 속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 어셈블에서 모두가 함께 이곳에 대한 결정한다.

 

 

실내 체육관이 있어 요새에서 수련을 하기도 한다.

Q.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용료를 내는가?

A. 이곳에 있는 체육관도 배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한다. 하지만 외부의 일반적인 체육관과의 다른 점이 있는데, 바로 소셜센터의 정신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한달에 12유로 정도로 가격은 저렴하면서 수준은 외부와 같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지불할 수 있는 수준 정도에서 충분히 이런 사회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버는 돈으로만 생활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외부에서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번다. 우리가 여기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은 공동의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런 경험을 지속하는 것이다.

 

 

Q. 이웃들은 이 공간에 대해 잘 알고 이용하고 있는가?

A.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점거공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잘 알려져있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 이웃 중에도 성향에 따라 이곳을 좋아하는 이도 싫어하는 이도 있다. 파시스트들도 많이 살고 있고.

 

 

Q. 이곳을 운영하기 위한 규칙이나 회칙같은 것이 있는가?

A. 이곳에서의 모든 활동은 아나키즘에 바탕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도구라 부른다. 일종의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칙들은 어셈블을 통해 만들어지며, 현재는 보통 40명정도가 참석한다. 7월은 다들 휴가를 가거나 하기 때문에 좀 적은 편이다. 어셈블에는 같은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참석 가능하다. 반성차별주의, 반혐오주의, 반파시스트, 자유 지상주의자 등.

Q.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서 머물었나?

A. 2000, 18살때부터이다. 우리 가족은 이 근처에 살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는 걸 좋아했고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Q. 지방정부에서 쫓아내려고 한 적은 없나?

A. 우리는 정부와 연락을 취하지 않으며 어떤 정치인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국가나 정치시스템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 쓰레기기 때문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 ^^ 우리를 쫓아내려고 한 적도 있지만 우리는 계속 저항해왔다. 우리는 여러 경험을 통해 충분히 저항할 만큼 강해졌다. 거기다 이곳은 30년 가까이 된 역사가 있는 만큼 주변에 여러 친구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를 변호해주고 함께 지켜주고 있다.

 

 

Q. 이곳의 목표는 무엇인가?

A. 우리에게 돈이나 소수 정치가들로부터 독립된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Q. 당신은 이러한 경험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보는가?

A. 나는 이런 류의 경험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란다. 폭풍이 시작되려면 작은 빗방울이 모이기 시작해야 한다. 빗방울이 모이다보면 폭풍 이상의 것이 되기도 한다.

 

 

Q. 이곳의 영향을 받은 다른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이곳에 연락을 하고 오는 이들이나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에게 달린 것이다. 당신이 여기에서의 경험을 가지고서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달린 것이다.

이곳은 또 다른 사회의 예시일 뿐이지 이곳에서의 경험이나 생각들을 가지고서 또 다른 뭔가를 만드는 건 이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그저 존재함으로써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하는 게 전부다. 자유의지 가진 사람만이 스스로 변화할 가능성 지니고 있다.

 


 

 

 

이렇게 요새의 공간들을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었다. (뼈가 있는 인터뷰였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우리는 콘서트와 함께 열린 팝업샵에서 음료를 마시며 쉬기로 했다. 그때 또 뜻밖의 만남이 있었다. 이날 공연을 보러 온 미술작가와 CSI 뉴욕 음악감독을 우연히 만난 것이다.

마침 자리로 돌아온 마리오가 그들에게 우리를 소개시켜주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우리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내년에 이탈리아에서 공연을 했으면 좋겠다며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래서 올해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긴 시간 우릴 안내해준 마리오와 로렌조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우린 너무나 큰 환대와 안내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마리오가 뜻밖의 선물까지 안겨줬다. 바로 그들이 연구하고 제작한 책!!

 

정말 그 가슴뭉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귀한 자료인데, 선물로 턱! 하고 쿨하게 준 것이다. 비록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그림 위주로 읽었지만(...) 우리에게 이탈리아어 마스터(!)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준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간 복잡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던 멤버들도, 평소에도 관심이 많아 스쾃을 연구하던 멤버도,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를 마무리하며 많은 메시지를 얻고 돌아갈 수 있었다. 아쉬움은 있었으나 헤어지는 걸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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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썼는데..... 심지어 2개로 나눠서 완성본 만들기 직전이었는데.....임시저장 목록을 싹 날려서....

정말.... 너무나 슬픈 마음을 안고 다시 열심히 작성해보겠습니다.... 눈물 좀 닦을게요......

 


 

 

마이의 농장을 떠나, 피렌체의 테라베네 몬데지로 왔다!

 

직접 만든 표지도 개성이 넘친다!

 

"테라베네 몬데지"

몬데지의 정식 명칭은 “villa di Mondeggi”,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방, 피렌체의 남쪽에 위치한 바그노 어 리폴리 마을의 200헥타르에 달하는 규모의 별장의 이름이다. 테라베네 몬데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테라 베네 코뮌 피렌체 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캠페인의 이름이다.

 

방치되어 있던 별장저택

 

15세기부터 귀족의 별장으로 쓰여 온 몬데지는 1960년대에 피렌체 지방정부의 재산이 되었고, 줄곧 농장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1500만 유로의 채무가 발생하여 지방정부는 땅을 매각하여 부채를 청산하고자 했다.

이때, 위원회가 캠페인을 시작해 농업을 통하여 농장을 회복하고, 생태적으로도 지역 경제적으로도 순환이 가능한 실험을 시도했다.

이에 지역민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공감을 표했고, 20141014일 피렌체 지방정부의 몬데지 농장 매각을 위한 경매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온 결과, 지난 4, 몬데지 농장은 지방 정부의 매각 가능한 자산에서 (적어도 2021년 까지는) 제외되었다.

 


 

 

"지오반니 안녕!" : 드디어 다시 만난 지오반니

로마에서 스니아 행사 때 만났던 지오반니와 직접 연락을 하며 무사히 농장에 도착했다. 정말...농장까지 올라가는 길은 험난한 오프로드길이었다.... 겨우겨우 도착한 우릴 반갑게 맞이해주던 지오반니! 인사를 나누고, 곧 커뮤니티 공간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농장 마당에서 훌라 멤버들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 농장도 동물들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개, 고양이, 닭, 돼지, 거위가 여기저기 마음껏 다니고, 이곳 공동체 멤버들과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다. 현재 몬데지에는 2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200여명이 농장을 함께 돌보고 있다고 했다.

 

 

벤치에 앉아 몬데지의 다른 멤버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잠시 다른 일을 하러 갔던 지오반니가 웬 거위떼와 함께 돌아왔다. (농장에서 처음 알았는데, 거위가 외부인을 굉장히 구별을 잘해서 집을 꽤 잘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린 계속 마주칠 때마다 위협당했다....

지오반니를 우두머리로 따르는 거위무리! 우릴 주시하던 대장 거위. 강력한 부리로 계속 콕콕 찔러댔다!! 

 

 


"인터뷰"

 

Q. 시민들의 힘으로 지방정부의 매각 계획을 저지하고 사용권을 얻어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2021년까지는 잠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에 또 다시 매각계획이 나오고, 강제 퇴거를 당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A. 위원회에서 몬데지를 점거한 게 5년 전이다. 하지만 실제로 활동이 시작된 건 6년 전이다. 점거 이전에 공유지(common land), 공유재(common thing)화를 시작했다. 처음에 이 땅의 주인과 공공활동을 하자고 설득하고 조금씩 그런 활동을 해왔다.

 

2013년부터 시작된 몬데지 땅의 매각을 막기 위한 운동은 지역적 성격이 강한 참여적인 투쟁이지만 국가적, 국제적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는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1) 몬데지(Mondeggi)를 공동으로 인정 받기 위해 소유자 기관 (Metropolitan City of Florence)과 협상 시도: 이 방식은 공공 회의 및 기관 대표와의 회의, '공동 인정'에 대한 법률을 위한 국가적 경로의 참여가 포함된다. 위원회에 기초하여 원칙 및 의도 헌장 작성과 시민 사용 선언을 했다. 지금까지 어떤 기관도 공식적으로는 우리와의 대화를 수락하지 않았으며 공식적으로 인정 받지도 못했다. 토지와 주택은 점거 상태이다.

 

(2) 마스터가없는 농장의 직접 자체 관리: 이 방식은 Mo.TA 프로젝트, 주택 단위, Genuino Clandestino 네트워크의 피렌체 노드, 농업 프로젝트, 다양한 유형의 이벤트 및 이니셔티브, 어셈블리, 농민 학교 등이 있다. 이 과정의 목적은 영토를 관리하고 가능한 많은 수의 사람들을 참여시키며 기존 방식에 대한 자율적인 삶의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Q. 테라베네 몬데지는 모단체인 Genuino Clandestino의 운동 중 하나로 알고 있다. Genuino Clandestino는 식량문제 외에도 노동운동, 낙태폐지, 양성평등, 반 파시즘운동 등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대안적인 삶을 사는 방식 중에서도 단연, 농업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데, 단순히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 같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A. 알다시피 우리는 단순한 농업 진흥 프로젝트가 아니다. 이것은 농민 공동체에 생명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다. 이 운동의 특징은 식량 자급자족, 연대와 저항하는 공동체의 창출, 임금 노동의 자유, 평등주의적 관계의 추구, 모든 분야의 시스템에서 자치의 추구, 도시의 투쟁과의 관계 및 영토의 방어 등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의 근간인 농민 공동체를 되살리고 무분별한 정부의 부동산투기에 저항하고 진정한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지오반니를 따라, 숙소 건물 안에 있는 직접 만든 빵이나 식료품을 저장하는 공간을 둘러보기도했다.

Q. 많은 청년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들었다. 도시에서만 살다 와서 농사를 처음부터 배우는 청년들도 있는가? 그들이 이곳으로 오는 이유, 이곳에서 찾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서만 자라서 농작물에 대해 전혀 몰랐다. 그래서 누군가는 농사를 짓거나 올리브밭을 가꾸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우리 각자는 몬데지에 있는 동기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이 운동의 기조를 공유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Q. 지오반니 당신은 언제 이곳에 왔나?

A. 나도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다. 몬데지에는 2년전에 왔다. 살기 시작한 건 1년이 좀 넘었다. 친구가 이곳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15년 전부터 있었고, 7년전부터 농민운동에도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된 건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정치와 농업이 다 있으니까.

 

나는 베로나에서 왔다. 이곳은 파시스트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안티-파시스트로서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나는 31살인데, 10대 때부터 집단적 운동을 해 왔다. 모두가 똑같은 정치적 비전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좌파쪽, 사회주의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었다. 아나키스트나 공산주의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딱 뭐라고 규정할 순 없는 그런 좌파적 성향을 지닌 이들의 그룹이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는 파시스트들이 많이 있다. 역사적인 개념에서 파시스트와는 좀 다르겠지만 현재도 파시스트들은 많이 존재한다. 파시스트란 무엇인가? 내 경험과 공부 상으로 파시스트란 자본주의 사회의 기층부에 해당한다. 자신의 길만 옳다고 하는 이가 그 길을 가게끔 다른 사람에게 강압을 행세하는 자들을 파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국가주의의 바탕이 된다.

 

 

Q. Mo.T.A 프로젝트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먼저 협조를 요청했다고 했는데 지역주민들은 몬데지에 와서 정착하거나 활동하는 사람들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보고 관계를 맺었는가?

A. 몬데지는 "테라베네 코뮨 피렌체 (Terra Bene Comune Firenze)" 회의에서 태어 났으며 항상 다면적이고 참여적인 현실로서 이에 공감하는 이들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항상 점거를 포함한 모든 결정을 함께 내렸다.

 

계속해서 몬데지 경험을 하러 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300-400명 정도가 다녀간 거 같다. 이런 사람들의 대다수는 Mo.T.A 프로젝트로 인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점거의 시작부터 있어왔다. 4000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심겨져있는 거대한 토지에 누구든 와서 이곳을 가꾸고 먹을 수 있게 해 왔다. 올리브오일을 직접 만들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올리브오일은 매일 누구나 먹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이다. 그래서 이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갖는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곳은 버려진 땅이었고 관리되지 않은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이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곳을 청소하고 돌보게 되면서 4000그루의 올리브나무가 그런 사람들에 의해 가꿔지고 있다. 와서 몇 그루를 돌보든 전체 수확량을 똑같이 나눠갖는다. 이 올리브유를 가족이나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Q. 공유지로 이곳을 운영해 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A. 몬데지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복잡하고 계층화 된 경험이기에 누군가의 대답으로 이를 대표할 순 없다. 다만 늘 함께 이곳의 강령이나 규칙을 정하고 이를 따르며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또한 당신과 같이 다양한 방문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며칠 머무르기도 하는데, 이런 방문자들과 거주자들간의 갈등이나 마찰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공간분리를 한다거나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것과 같이 외부인 응대역할을 적절히 수행하여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함께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는 늘 생겨날 수 있지만, 우리의 정치적 목적과 실천적 저항의 모토 속에서 이를 조율하고 변화시켜나가려 한다.

 

 


 

스멜 is 굿

인터뷰를 마치고 간단히 공동체가 숙소로 사용하는 본 건물을 안내받았다. 식품저장 공간이나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 함께 사용하는 부엌 등을 둘러봤다. 마침 한 멤버가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곳의 저녁식사는 함께 사는 공동체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저녁 당번을 한다고 했다. 심지어 이 날은 운좋게도(?) 요리실력이 출중한 친구가 요리 당번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린 그 저녁에 초대 받아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리비에토에서 부탁받았던 패트리치아 아주머니의 편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일이 늦게 끝나 저녁 시간 막바지에 도착했던 바로 그 프랑코였다. 우린 '편지 전달식'을 했고 인증 사진을 찍어 패트리치아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D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던 인터뷰.......... 대장님들 체력 존경합니다....... (필자는 이미 지나친(?) 영어 스피킹&리스닝으로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우리 이제 어디서 자요...?"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가 먹은 그릇을 각자가 씻어 정리한 뒤...벌써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이제 슬슬 잘 준비를 해야하는데... 흘러내리던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숙소 공간을 안내받기로 했다. 이들과 함께 공동체 공간에서 1박을 하기로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우린 봐버렸다.

 

 

몬데지에 막 도착했던 그때!

다들 무언가를 털거나 버리거나 불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슬쩍 물어보니, 숙소의 한 곳에 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싹 모아서 처리하는 중이었다. 하늘을 지붕삼아 흙을 이불 삼아 어디서든 잘 수  있다고 했던 훌라 막내 멤버마저 '이...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하며 훌라 대장님께 약한 모습을 굉장히 어필했다. 게다가 하필 그날 숙소의 수도가 고장나서 씻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다. 고민하던 대장님을 뒤로 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제까지 이렇게 신속했던 적이 없었다!!!)일사분란하게 xx비앤비 어플과 인터넷(잘 안터짐)을 어떻게든 하며 근처 늦은 시간에도 받아주는 숙소를 뒤졌다. 그리고 !!

 

근처 오래된 수도원이 아직 열려있었다! 몸이 아픈 멤버가 있었어서(그게 바로 저요.....) 양해를 구하고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마침 독일에서 온 스쾃 연구자팀이 농장에 도착했는데, 그 팀들과 함께 농장과 다른 공간들을 소개해주겠다는 지오반니의 제안에 흔쾌히 ok 했던 우리는 다음날 농장 투어를 기약하며, 수도원 숙소로 이동해 푹 쉬었다.

다음날 아침. HP풀 충전된 훌라 멤버들. 보기보다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편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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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를 떠나 오르비에토로 향한 훌라 멤버들. 장시간의 운전으로 점점 피폐해질 때쯤.......! 마이의 농장에 도착했다!

 

온갖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농장을 향하는 산길을 헤치고 도착한 곳은 어.... 약간, 이건.... 천국인가!? 싶었던 인상을 줬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사람들을 반겨주고, 자연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린 로마에서 만났던 '마이'와 다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수시간을 자동차로 달려온 우리를 직접 담근 시원한 와인과 함께 반겨주던 마이

 

 

마이의 농장은 스쾃 이후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지속가능한 라이프 무브먼트 공간으로 운영 중이었다. 훌라의 시선으로 이곳은 '변방의 전술공간'이자 '삶의 터전'이 된 점거 농장이었는데, 빈 농가를 점거하여 자율주의 농민운동에 동참하는 그룹으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현재 숙박, 동물치유, 체험프로그램, 식사제공, 농산물 생산 및 판매 등이 이루어지는 커뮤니티 농장으로 자리잡아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며 농장을 둘러보고, 동물치유와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 동참했다. 인터뷰는 농장의 주인인 마이와 그의 파트너 리카르도, 근처 다른 점거농장에서 살고 있는 프랑코와 함께 했다.

 

 


 

"인터뷰1: 직접행동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 마이의 점거운동과 땅에 대한 생각"

 

Q. 오랫동안 점거운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A. 나는 지금은 스페인에 속해있는 바스크 출신이다. 스페인 프랑코 시절 억압을 많이 당하고 언어도 금지시키고 학교도 폐쇄해서 스페인 학교를 가게 만들었다. 정책적으로 스페인에 흡수시키고자했다. 이에 주민들은 저항해왔다. 바스크가 경제적으로 열악할지 몰라도 천연자원은 풍부한 곳이었다. 그래서 스페인 정부에서는 이곳의 천연림 등을 망치기로 작정했다. 이곳은 비도 많이 오고 수자원이 풍부한 곳인데, 일부러 댐 건설을 해서 병에 든 물을 사 먹게 하려 했다. 직접행동주의에 입각하여 이에 저항하는 생태운동들이 벌어졌다.

 

내가 18살때 나를 포함한 9명의 멤버들이 일련의 급진적 활동을 펼쳤는데 그 중에 하나가 거대 케이블을 끊는 작전이었다. 이를 통해 스페인정부의 경제적 손실은 매우 컸다. 그럼에도 8명의 멤버들이 기소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당시 경비원의 총을 뺏어서 지붕위에 올려두고 한 시간 반 정도 묶어두었는데, 이를 사유로 우리는 룩셈부르크로 도피하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스페인 정부의 행태를 고발하였다. 그런데 당시 같이 활동하는 이들이 영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나는 통역으로 계속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Q. 어떻게 이탈리아에 오게 되었고, 그 전에 어떤 류의 스쾃활동을 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

A.

"1999년 런던 밀리니엄휠 점거"

1999년에는 런던에서 밀레니엄휠을 점거했는데, 이곳은 2000년에 개장을 준비하고 있던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기어 올라갔는데, 실제로 우리는 모두 탁월한 클라이밍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 올라 해먹에서 4일을 보냈다. 우리는 이곳 개장 10일 전쯤 이 행동을 했다. 우리는 1210일에 그곳을 점거하고 인권을 위한 농성을 벌였다.

 

"2000년 바티칸 점거"

2000, 로마에서는 150명 정도가 우리를 도와줬다. 바티칸에 들어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벽을 오르기 위한 여러 장비도 필요했다. 우리는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3개월을 준비했다. 우리는 두 가지 메시지를 실었다. “NO DAMS", "WHAT ARE THE HUMAN RIGHTS?" 왜냐하면 댐을 이렇게 만들게 되면 물은 사유재가 되고 이를 병에 담아 파는 것을 사마셔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댐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때는 새천년의 시작이었고,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한 곳으로 여겨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같은 9명의 히피가 거기 들어가서 이러한 액션을 하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었다. 이때는 전유럽이 함께 했다. 우리는 이 행동을 위해 3개월간, 이 주변을 관찰하고 장비를 갖추는등 철저한 준비를 기했다. 007작전을 수행하듯이. 나 외에 8명은 경찰에 눈에 띄면 바로 잡혀갈 상황이었기 때문에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같은 점거공간에 숨어있었고, 현장을 답사하고 카메라 위치나 경비원을 살피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3개월간 우리는 로마에 있는 여러 점거공간들에 머물렀고 그때 로마에서의 점거형태를 보고 상당히 놀랐었다. 건물을 점거하여 500명이나 되는 여러 가족들이 살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다. 당시 나는 영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로마에 비하니 영국의 점거는 일종의 패션처럼 보일 정도였다. 행동주의자로서 나는 인권을 위해 점거농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지붕을 갖는 것은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우리는 모두 어렸다. 근데 이곳에 왔더니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수백명의 사람들이 함께 점거하고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로서는 무척 놀라운 일이었고 이것 때문에 나는 로마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로마의 점거운동을 살펴보고 탐사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신들이 이렇게 다니는 것처럼. 나는 이탈리아 삶으로 존재하는 점거운동에 대해 알기 위해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니까 2000년에 바티칸 점거를 위해 처음 로마에 왔던 것이고 당시 런던에 있는 대학에서 일하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돌아가서 6개월 정도 일을 더 하다가 일을 그만두고 2001년에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로마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에서 살다가 200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돌아갔었고, 그때 나는 6개월 정도 있다 올거라 생각했는데 4년이나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시아로 도망갔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2년간 여행했다. 머리를 식히러. 그 이후 2014년에 돌아왔다.

 

 

Q. 점거운동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누군가는 2채의 집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는 1채의 집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두 채의 집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누군가 만약 집 2채를 가지고 있으면서 한 채를 10년간 비워두게 되면 그 집은 점거하는 이의 것이 된다. 10년 이상 집을 그냥 비워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지붕을 가질 권리는 누구나에게 있다. 영국에서는 이런 경우 인권을 남용한 것이라 판단하기에 이런 규제가 성립가능하다. 부자들은 여기저기 집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집 한 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건 옳지 않다.

 

이 지역의 많은 농장들은 지방정부에서 소유하고 있다. 50년 전쯤에 이 농장들은 버려졌다. 농업이 경제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들은 버려졌고 대도시를 떠나 자신의 삶을 전환하고 자연속에 살기 원하는 청년들이 이곳으로 왔고 이곳들을 점거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 주변에 약 20개 정도가 그렇게 점거농장이 되었다.

 

며칠 후에 여러분이 가게 될 몬데지는 5년 정도 된 새로운 경우다. 하지만 그곳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이며, 지방정부와 다국적기업이 소유하다가 현재는 다국적기업이 빚 때문에 떠나고 지방정부가 이 땅을 팔려고 여러번 시도하다가 몬데지 사람들이 이 매각을 중지시켰다. 또한 이곳을 사고자 하던 다국적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악랄한 짓을 자행하던 곳인데, 멕시코의 어떤 곳도 땅을 사서 그곳의 공동체가 사용해오던 수자원을 묶어버리고 코카콜라가 물보다 싸게 만들어버렸다.

 

몬데지 쪽 사람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주변사람들과 함께 큰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피렌체라 등지에서 콘서트를 열어 사람들을 모으고 그 사람들에게 이러한 다국적 기업들의 행태를 알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린다.

 

오늘날 정보홍수의 시대다. 하지만 실제로 이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실제로 다국적 기업 누텔라는 이 근방에서 농부들로부터 땅을 사고 GMO 작물을 제배하면서 땅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한 농부들에게 돈으로 땅을 하고 로컬라이프를 파괴한다.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단일작물제배이다. 땅도 휴식이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농사를 짓는 땅을 돌아가며 쉬게 해 준다. 우리가 24시간 계속 일할 수 없는 것처럼 땅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오래된 지식이다.

 

 

Q. 당신은 스스로를 반-자본주의자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A.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로봇처럼 일하러 가고 집에 오고 여가시간을 보내며 쳇바퀴돌 듯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돈이 필요할 때만 일하러 간다. 그 외의 시간에는 마크라메를 한다던가 언어를 배운다던가 여러 가지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물론 내가 뭔가 한다는 건 그 자체가 일이다. 하지만 통역을 한다던가 하는 이런 일들은 그냥 무료로 하는 것들이다. 이게 가능한 건 내가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명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다. 어떤 매스미디어나 유행에 따라 옷이나 화장품을 사고하는 것들 말이다. 난 화장을 해 본 적도 없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내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산에서 아주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런데 젊은 세대를 보면 그들은 뭔가 끊임없이 사길 원하는 것 같다. 핸드폰이 필요하고, 타블렛이 필요하고, 새 모델이 나오면 또 그걸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계속되고 가속화되는 미친 짓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삶의 주인이 아니게 된다. 당신 삶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되며, 돈이 지배하게 된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렇게 살게 되면 생태적 사고가 마비된다. 우리는 현재 한계지점에 다다랐다. 쓰레기를 두고 보면 지난 40년 동안 너무나 많은 쓰레기를 생산했다. 오늘날 유럽의 쓰레기장은 아프리카이다. 그들을 두고 불쌍하다고 하면서 NGO는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모금을 하고 거기에 오래된 컴퓨터를 보낸다. 거기 버스가 필요하면 오래된 버스를 보내고 그렇게 3~5년 만에 물건들은 못 쓰는 것이 되어버린다.

 

농장에서의 따뜻한 환대

 

이때 마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Q. “너희가 하고 싶은 건 뭐야?”

 

A. 우리는 대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연구조사에서부터 기획과 콘텐츠 제작 그리고 공유의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발신하고 싶다. 도시를 생각해 보자라고 말이다.

사실 아직 우리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에 둘러싸여있는지 생각해보기를, 우리는 너무 바쁘고 그저 소비하며 시간을 허비하는데 급급하지 않는지를 말이다. 익숙한 시스템을 낯설게 보고 그 관계에 대해 사유하며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 주체적인 삶이 시작되고, 그 도시는 진정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진짜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노닐던 나귀는 여기서 처음 봤다.

 

마이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근처 점거 농장에 살고 있다는 히피아저씨 프랑코를 초대해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또 다른 점거 농장의 프랑코 인터뷰"

 

 

Q. 농장점거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나는 북부이탈리아 오바다 산업지대에 공장노동자로 일하다가 1977년에 이 지역으로 오게 되었다. 오바다의 공장들은 다 문을 닫았었고 농사를 지으며 대안적인 삶을 살고 싶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다. 당시 80여명의 히피들이 빈 농가 10개 정도를 점거하여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원하는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이곳에서 펼치고자 했다. 당시 땅은 지방정부 소유였으며 Agrifood라는 다국적 기업에서 이곳에 올리브나무를 가득 심었다가 제대로 운영을 안 하고 방치해둔 상태였다. 우리는 이 기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Cooperativa La racolta"라는 연합조직을 만들고 법적 권리를 주장해왔다. 70년대 당시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이 집들엔 물도 없고 전기도 없었다. 그리고 농가는 방치되어 있었고 밭도 엉망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청소하고 수리하고 살만하게 만들었다.

 

 

Q. 당시 청년이었을텐데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살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

A. 이전에 나는 돈을 벌고자 하는 경제적 이유로 이탈리아 북부의 산업도시에서 일했다. 하지만 돈을 벌어도 행복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돈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연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이 지역의 점거운동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

A. 처음에 이 농장들은 로컬 사람들이 먼저 점거했다. 70년대 히피운동을 하던 한 친구가, 이곳에서 농장점거를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줘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70년대 이탈리아의 경제적 상황 상 농부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고, 도시의 공장들은 문을 닫으면서 이곳의 농가들은 빈 채로 남겨져 있었다. 우그렇게 이곳에 살기 시작했고 80년대에는 로마사람들도 이곳으로 오기 시작했는데 정치적 배경을 지닌 조직들도 오기 시작하면서 자연 속의 극장이라는 프로젝트가 만들어졌고 이에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들은 여전히 여기 곳곳에 살고 있다.

 

5년 전 정부와의 협약을 통해 소유를 인정받게 되었는데, 대신에 상징적인 임대료 약 900유로를 정부에 내게 되었다. 정부 허가 아래 이러한 점거가 인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제스쳐. 이 전에는 늘 쫓겨날 위험에 놓여있었다. 경고딱지가 날아왔고 늘 긴장이 도사렸다. 하지만 이 협약 이후 거주를 인정하게 되면서 그런 일을 없어졌다.

이곳 옴브리아 지역은 공산당 무장단체들도 와서 공간을 점거하면서 유지의 딸을 유괴해 돈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싸잡아 추방의 위협을 당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일은 없다. 정부에서 인정한 이유는 우리가 버려진 집들을 살만하게 만들었고 황폐해진 땅도 돌보고 회복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협약 이후로는 집단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Q. 지역사람들은 당신과 같은 외부인들이 와서 빈 농장을 점거하며 살아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그리고 지금은 어떠한가?

A. 사실 지역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했다. 알다시피 히피는 생김새부터가 재미있지 않나. 머리도 길고,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다니고. 거기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까 상당히 흥미로웠던 것 같다. 그리고 빈 집들이 사람들로 채워지니까 아무래도 싫어하진 않았다. 많을 땐 최대 200명까지도 있었다. 지금은 9-10채 정도가 남아있다. 히피들은 자녀를 낳아도 친부나 친모가 누구인지 알수 없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자식세대들은 여길 떠나게 되고 히피들도 나이가 들어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Q. 히피세대가 벌인 점거운동과 현재 젊은 세대들의 점거운동은 상당히 달라보인다. 맥락은 비슷한 것도 있지만 꽤 다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세대가 다르면 감성과 문법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것 같다. 하지만 공유하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은 이미 여기()에 다 존재하고 있으며, 그걸 소비하지 않고 삶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과 소비해버리는 것은 다르다.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소유하는 데 있어서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게 필요하다. 시간을 소유하는 것이 돈을 벌려고 시간을 소모하는 것 보다 현명한 일이다. 돈을 덜 필요로 하고 삶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려 하는 동기에서 출발하여 삶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농장을 운영하고 공간을 꾸려가는 이들의 이야기 외에도, 농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과 워크숍, 동물들의 스쾃(!)까지 함께 했다. 또 농장의 경영을 위해 직접 만들고 있는 유제품 제작 과정도 슬그머니 따라다녔다:)

 

농장에서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피자만들기 워크숍을 구경했다.

 

 

직접 만든 치즈는 인기가 많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당나귀, , 고양이, , 소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것도 넓은 땅에서 말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다가왔고, 부비고 뒹굴고 다가왔다. 자연을 곁에 두는 것이야 말로 인류가 살아남을 길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음 행선지인 테라베네 몬데지로 향하기 위해 인사를 나눴다. 우리가 몬데지로 간다고 하자, 패트리치아 아주머니가 '얼마 전까지 이곳에 머물다간 프랑코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며 급히 메시지를 적어줬다.

덧붙여, 아무래도 오르비에토의 이 농장은 연령대도 상대적으로 높고, 정적이라면 몬데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 급진적이고 에너지도 높아 비교점이 많을 거라며 응원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피렌체의 몬데지를 향했다.

 

떠나기 전날 밤, 떠나기 아쉬운 마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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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길어져 나폴리 알토페스트 디렉터 안나 게수알디의 인터뷰를 따로 작성했다. :)

 

"인터뷰"

Q1. 이탈리아는 스쾃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알토페스트는 예술가와 시민(공간 기부자)들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사적인 공간(소유한 것들)을 자발적으로 내놓게끔 만드는 방식으로 공간문화 투쟁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면?

 

A1.근접성은 알토페스트의 키워드 중 하나인데, 아티스트 & 공간기부자 & 관객들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낸다. 특히 예술가는 단지 퍼포밍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와 2주 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나간다. 예술가들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환대받으며, 호스트인 시민들도 이 침입을 환영한다.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함께 작업을 해나가면서 서서히 경계를 무너뜨린다. 또한 지극히 사적이었던 호스트의 공간은 관객들에게 오픈됨으로써 자발적인 공유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 과정은 마치 감염, 바이러스와 같다. 우리는 도시의 바이러스와 같길 원하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바이러스가 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퍼지길 원한다. 우리는 좋은 바이러스이다!

 

 

Q2. 축제 기간 전 예술가와 공간기부자(시민)가 최소 2주 동안 그 기부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다고 들었다. 서로가 얽히고설키면 불편할 거 같다.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면 강력하고 긴밀한 공동의 주제 또는 철학들이 있을 거 같은데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 그리고 공동의 생각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방법을 알고 싶다.

 

A2. 맞다. 예술가와 공간기부자를 매칭해야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먼저 예술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형화된 극장에서 공연했던 무엇이 아니라, 이 작품들이 시민들의 아주 사적인 공간들에서 재고될 수 있는 작품인지의 여부를 묻고 그 과정을 수긍하느냐이다. 예컨대 공간기부자의 다른 관계들을 고려하는 것인데, 공간기부자의 친구들이나 누군가 집을 방문한다던지, 생일 등과 같은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경계선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경계선이 교차되면서 존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공간기부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탈리아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한다. 그래서 언어의 소통이 어렵더라도 여러 방식을 통해 소통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그들의 물건들을 반영해서 예술화하는 것에 있어서 환대하며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가와 시민을 매치할 때는 분명한 비전과 오리진 그리고 동시에 ‘Crisis’를 염두에 둔다. ‘Crisis’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허술하고 무너지기 쉬운 것들, 깨지기 쉬운 취약함을 지닌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것은 순간을 만들게 되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

 

Q3. 2019년 알토페스트 축제에 참가 신청이 600건을 넘었다고 들었다. 공간, 공간 기부자, 예술가들을 캐스팅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A3. 초대하는 예술가들은 보통 자신의 시학을 지니고 있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작업에 대해 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단지 수행하거나 제품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초대한다. 도시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으며, 예슬도 과정 속에 있고 이둘은 직접적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예술 과정에 예술가들이 하듯이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이들을 초대한다.

 

 

Q4. 알토 페스트는 연극 단체인 ‘TeatrInGestAzione’의 예술감독들이 중심이 되어 기획 운영되고 있으며, 극작가적 관점에서 축제의 경로를 추적하는 하나의 통일된 극본을 만들어 한편의 연극을 구성하듯이 축제를 만들어나간다고 들었다. 어떤 것인가?

A4. 축제를 위한 축제가 아닌 Art Peice를 만드는 것이다. 축제는 Tool일 뿐이다. 우리는 아티스트를 만나길 원하는 것이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시적이고, 과정으로서의 축제다. 축제의 경로를 추적하는 동안 예술울 창조하는 우리의 몸은 공간을 이동하게 되고, 그것은 몸(피부)--집과 건물-지역-도시-우주에까지 이르게 되며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이는 참여하는 모두가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이고 시민으로서의 정치성을 인지하게 된다. 이 극본은 문화적 정치가 작동되게 되는 것이다.

 

 

Q5. 알토 페스트에 공간기부자로 참여한 시민들과 관객으로 참여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공유’에 대해 깊게 사고하는 것 같은가? 참여하고 싶은 시민들이 많은가? 이와 연결된 다른 행동들이나 흐름이 있는지 궁금하다.

A5. 첫해에 우리는 이웃들의 집 벨을 누르고 그들이 우리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지 물어보며 제안했다. 그래서 20개의 기부공간을 구했으며, 국내외 예술가 친구들(내가 운영하는 연극 컴퍼니에서 만난 예술가들)23명 정도로 시작되었다. 2019년 현재 600개의 공간기부자들이 제안했으며, 100개의 예술팀의 프로포즈를 받은 상태이다. 현재 나폴리에서는 알토페스트를 모르는 이가 없으며, 자신의 공간을 예술가들이 침해하고 일상의 균열을 내주기 바라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Q6. 2017-2018 EFFE(Europe for Festivals, Festivals for Europe)어워드를 수상하였는데, 알토 페스트를 접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단순히 축제의 의미를 넘어 도시실험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활동이라던가 네트워킹이 있는지 궁금하다.

A6. 알토페스트의 확장으로 2018년에는 나폴리외에도 몰타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9년 알토페스트가 끝난 후 Matera Basilicata에서 아고라와 오픈 어셈블은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속적으로 예술가와 공간기부자 그리고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이를 확산(좋은 바이러스의 감염)하고자 한다.

 

Q7. 계속 나폴리에서 하다가 2018년에는 몰타에서도 축제를 하였는데 이유가 있는가?

A7.알토페스트의 기획에 대한 확장성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유럽 각국에서 예술과 도시에 관련된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이 축제에 참여하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으며 러브콜이 들어온 상황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작년에는 나폴리와 몰타, 두 곳에서 진행했던 것이다. 우리는 감염자(바이러스)가 아니던가!

 

Q8.전 세계가 경제 파동으로 흔들리고 있다. 점점 신자유주의 사회는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게토를 형성하게끔 사람들에게 부추기고 있다. 이로 인해 여기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은 살 곳을 잃는다. 토건논리나 부동산 개발논리에 맞서 당신들이 선택하는 전략과 이로 인한 목표가 있다면 궁금하다.

A8. 노인은 죽고, 세계는 글로벌화 됐다. 빈건물은 많고 계속 B&B로 바뀌고 있다. 다행히 나폴리에서의 진행과정은 다른 도시들 보다는 느리다. 도로를 깔고 리뉴얼도 하지만 주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거나 역사적인 건물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등 법정 규제들이 많다. 그래서 쉽게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리지 못한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지금 현재의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

 

Q9.당신들의 꿈은 무엇인가?

A9.경계가 우리의 한계를 만들면, 싸워서 경계를 오염시키고 확장시켜나가면 그만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정을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전과는 다른 레벨로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훌라 멤버들에게도 울림이 컸던 그녀와의 인터뷰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울림이 있길!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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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아에서 만났던 마이데어에게 다음으로 이동하는 곳이 나폴리라고 했더니, 그가 한마디 외쳤다.

 

“Crazy Naples!”

 

우리는 왜 그렇게 말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신나게 그곳으로 출발했고,

드디어 도착하는 순간 우리도 모르게 외쳤다.

 

“Crazy Naples! Oh My God!”

 

 


 

 

우리가 도착한 나폴리 구시가지는 마치 인도를 방불케 했다. 360도(원점!?)를 꺾는 좁은 도로에서의 운전, 주차할 때 앞뒤 차의 박치기는 기본, 열정적인 사람들의 환대, 오래된 건물들, 삶의 색을 볼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빨래들, 테라스에 나가면 마주하는 이웃들의 나이스한 인사. (그리고 피자!)

 

크레이지 나폴리는 다양한 서식지를 품고 있는 숲처럼 아름다운 도시였다. 물론 운전은 고난이도에 속한다.

 

 

좁디좁은 골목과 촘촘히 얽혀있는 오래된 건물들은 나무가 우거진 우림 같았다. 도시 속에서 야생을 느낄 수 있는 나폴리는 우리의 세포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이런 곳에서 사유공간을 침투하는 예술적 바이러스 축제가 일어나고 있다니!

 

네비게이션으로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알토페스트의 첫 번째 장소는 주변의 떠들썩한 주민들의 인도와 오토바이로 안내하던 수선집 아저씨 덕분에 도착하게 되었다. 드디어 인터넷에서 봤던 알토페스트 포스터가 (아주 작은 포스터!! 알토페스트는 과한 홍보물을 설치하지 않더라! 그 때문에 찾기는 쉽지는 않았으나 과한 홍보물을 낭비하는 것 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원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것이 영원할 수 있다.) 걸린 건물을 찾았다.

 

 

2019 알토페스트 메인포스터. International Contemporary Live Arts_AltoFest

 

 

"알토페스트는?"

2011년 글로벌 위기로 이탈리아는 재정위기를 맞으며 큰 경제 위기 속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극장에는 관객들이 사라졌으며, 위급한 경제 상황으로 시민들은 예술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꺼버렸다. 알토 페스트의 시작은 이러한 위기한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연극 단체인 Teatr In Gest Azione의 창립자이며 공동 예술감독인 안나 게수알디(Anna Gesualdi)지오반니 트로노(Giovanni Trono)는 이러한 위기한계를 넘기 위해 정치적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다. 현대 퍼포밍과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실험적 축제를 나폴리에서 여는데, 그것이 바로 알토 페스트이다.

 

알토 페스트의 텍스처는 독특하다. 바로 예술가와 시민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인데 축제에 초청된 예술가는 일반적인 공연 장소가 아닌 시민들의 사유공간(, 주차장, 테라스 등)에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작품을 발표하기 전 10일 이상 그 공간 기부자의 집에서 거주하며, 창작 작업을 하고, 그곳에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예술가는 그 공간에서 거주하면서 어떤 극장의 장치 없이 집안에 있는 테이블이라던가 침대 등을 사용해서 무대화하고 공간의 물건들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재발견을 통해 반영하여 예술화한다. 또한 공간 기부자 시민(호스트)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하며, 직접 작품에 출연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에서 매년 여름 진행되는 국제 컨템포러리 라이브 아츠 페스티벌(International Contemporary Live Arts Festival)인 알토페스트는 그10회째를 맞이했다. 그들은 경계와 예술의 새로운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도시에서 실험적 사회성 프로젝트(Experimental Sociality Project)’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반적인 유럽의 스쾃(Squat) 점거운동과 달리 예술 운동으로 사유재산(공간)을 공유하게끔 유도하는데 여기에 대한 깊은 대화를 위해 감독인 안나 게수알도를 만났고, 작품들과 보이스오버 그리고 아고라 등에 참여했다.

 


 

보이스 오버(Voice Over)

처음 우리가 참여한 것은 보이스오버(Voice Over)였. 점심식사와 함께 진행된 이곳에서 우리는 식사를 대접 받았고, 드디어 감독 안나와 첫인사를 하게 되었다(작고 강단 있는 체구와 반짝이는 눈빛은 그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사람임을 증명했다.)

 

공동감독 안나 게수알디와의 첫만남!
지역 주민이 준비해준 꿀맛 같은 점심

참여한 예술가들이 식사 후,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고 우리도 그곳에 있게 되었다. 그들은 공간소유화 문제에 대해 논하였다. 학생, 시민, 주민, 예술가, 이민자등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특히 예술가들이 모인자리인 만큼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듣게 되었다.

<voice over>참여한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이야기하며 소개하는 자리/ Sul giardino degli aranci라는 아파트 주거공간에서 진행

예술가들은 제품을 제작하고 노출시키는-마치 미디어에서 하는 것처럼-것과는 달라야한다. 자신의 시학을 지니고 있어야하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어야만 한다. 공유과정을 통해 논의가 만들어지고, 플랫폼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예술가)의 역할이다. 알토페스트에서는 공간의 고정화 경계에 틈을 내는 오염원(바이러스)이 되어야만 한다.”

라고.

 

보이스 오버에 참여한 훌라 멤버들(알토페스트 스케치 영상 캡쳐)

 

 

이후 우리는 알토페스트의 여러 작품 피스들 중 4곳을 참여하게 되는데...

 

 


 

아틀리에 OIL-ORA IL LAVORO

나폴리의 공공기관의 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퍼포먼스로 현대 사회구조에서 정체성과 업무에서 관계에 전념하는 인간에 대해 표현하는 내용이다. 관람만 하는 공연과 달리 배우는 관객들에게 관계를 확장시키며 대중이 도덕적인 선택에 직면할 것을 촉구하며, 몸의 동의를 구한다. 즉흥적인 라이브셋 음악과 퍼포먼스는 공간을 다시 디자인 했으며, 우리는 몰입되어만 갔다.

<OIL-ORA IL LAVORO> 중 관객들에게 동의를 구하며 손을 들고 화답하는 장면 / 나폴리의 공공기관인 Citta Metropolitana의 유휴공간에서 진행

이 퍼포먼스의 언어는 이탈리아어였는데, 독립라디오에 영어로 통역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은 눈에 여겨볼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박자 늦게 손을 들고 응답했다.)

 

 


 

Mouvement D’ensemble (Sacre)

오래된 수도시스템이 있는 지하공간 입구에서 공연 기다리는 훌라 멤버들과 관계자들

나폴리의 오래된 수도시스템이 있는 지하공간(Aqua Augusta)에서 진행된 이 퍼포먼스는 인류세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기후 변화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종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게 하는 은유적 표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는 이원론적으로 분리된 서구의 접근방식으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어야만 하며 패러다임 전환에 기여해야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건축을 해체하고 공간을 자연의 기초물질로 재구성하여 관객들에게 직접, 물리적, 감각적 경험을 하게 하는 이 퍼포먼스는 나(개인, 2인 이상이 아닌)를 모래의 원안에 묶었는데, 이때 들었던 생각은 "내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자연의 일부라는, 인간의 종이 무리지어 무언가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이 쌓아올린 게토는 인류와 다른 타종에게 위험하다, 도시 속에서의 야생성과 생태계 회복이 필요하다"라는 것들이었다.

 

<Mouvement D’ensemble (Sacre)> 중 예술가가 관객들을 모래의 원으로 묶고 있는 장면 / 나폴리의 오래된 수도시스템 있는 지하 공간에서 진행.

 


 

Apres La Chronique

<Apres La Chronique>중 배우들이 퍼포먼스 하는 장면/ Franzese씨의 집 안에서 진행

기부된 공간들 중에 개인의 집안에서 진행된 작품이다. 오늘날, 초연결관계망을 구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개인의 고립감에대한 쇼이다. 데칼코마니적인 요소로 진행되는 이 퍼포먼스는 배우 2명이 나와서 점차 몰아치는 개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구원하는 어떤 존재가 나타는데 이 사람은 실재 그 공간을 기부한 시민이다. 순간 궁금했다. 내 집에서 다르게 짜여진 공간과 시간 그리고 관객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내 집을 공유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하고 말이다.

 

공연시간 전, 대문 앞에서 다른 관객들과 관람을 기다는 훌라 멤버들

 

 


 

Look at me

Zamparelli씨의 마당과 계단에서 진행되던 공연 장면

Zamparelli 씨의 아파트 로비와 계단에서 진행되었는데 이곳의 많은 주민들이 함께 관람하였다. 이 작품은 21세기 여성의 성이 착취되고 마케팅 도구로 전락하는 여성의 경험을 토대로 리드미컬하게 짜낸 퍼포먼스였다. 반복적인 리듬 위에 제스처와 메시지를 담아냈는데 이는 중독성이 강했다. 우리는 이후에도 퍼포먼스 동작들과 반복되는 리듬을 따라했다.

 

“Haaa~ Look at me!"

Loot at me 중 퍼포먼스를 펼치는 배우들과 관객들

 

 


 

Agora

마지막은 알토페스트의 참여한 예술가, 공간기부자, 리서처, 관계자, 감독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픈 어셈블, 아고라(Agora)이다. 시적행동, 정치적 상상, 거주공간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이자 알토페스트의 핵심적인 만남의 장이다.

Agora/ 예술가와 공간기부자 그리고 리서처들이 대화 중이다.

 

여기서 가장 기억 남았던 대화들을 풀어본다.

 

주거는 알토페스트의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주거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하게 해야만 한다. 왜 다들 자기의 일, 집 등에 갇혀서 살아가는가? 그것을 넘어서길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게끔 하는 과정의 여정에서 질문이 생성되고 곧, 그것은 저항이 된다.”

 

알토페스트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주거지(사유공간)에서 대상(물건, 가구 등)이 반영하고 있는 고정되고, 갇혀있는 것 너머를 보게 하고, 재직조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술이 주거의 과정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과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리젠테이션에서 인용한 문구.

“history decays into images, not into stories.” Walter Benjamin-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아고라가 끝나갈 무렵 우리는 알토페스트가 일련의 과정 속 축제라고 깨닫게 되었는데, 이는 이들이 축제 시작부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아마 축제 이후에도 그럴 것이라 예상된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얽히고 풀어내고 다시 짜내는 과정들을 반복하였기 때문이다.

벤야민의 말이 이들에 대한 답인 거 같다.

 

Fondazione San Gennaro라는 회사의 컨퍼런스 공간에서 진행됐던 아고라

 

혹시 궁금한 분들을 위해 공유하는 알토페스트 스케치 영상 주소를 아래에 덧붙인다:)

 

https://vimeo.com/346267988 (알토페스트 스케치 영상1)

https://vimeo.com/346512657 (알토페스트 스케치 영상2)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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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의 첫 일정은 "포르테 프로네스티노(이하 포르테)"라는 스쾃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었고,

실제로 로마 근교에 위치한 그곳을 가장 먼저 찾아갔다.

왜 주소를 찍어도 나오지 않는걸까. 애가 타는 그들.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는 직역하면 "강한 요새"라는 뜻인데, 강한 '요새'답게(?) 주소를 찍어 찾아갔음에도 찾을 수 없었다.

 

우연히 개와 함께 산책하던 주민을 만나, 포르테 프레네스티노가 어디인지 알고 있느냐 물으니 잘 아신다!?

 

위치를 설명해주시고 "커다란 철문을 노크하면 안에서 사람이 나온다."는 것까지 설명해주셨다.

스쾃은 사전적 정의는 무단점거인데, 인근 주민도 위치를 알고 또 들어가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는 것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나쁜 이미지로 인식되지는 않다는 걸 유추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에서 이탈리아의 스쾃이 다른 나라의 스쾃과 차별되는, 강력한 의미와 특징을 반증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간 포르테는 과연 강한 요새였다.

 

튕겼다.

 

 

관계자도 만났는데, 미리 약속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나눌 수 없다며 거절했다.

우리는 미리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하자 고민을 잠시 하던 그는 '그 메일도 확인해보겠지만, 혹시 모르니 그 메일을 다시 보내주면 답장을 해주겠다'며 새로운 메일주소를 받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흥미위주로 공간의 이미지만 스케치 하고 떠나는 외부인들이 있어 경계를 하는 편이었다)

 

다행히도 일부 공간을 둘러보는 것은 괜찮다고 해서

사전 조사겸,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를 잠깐 둘러보고 두 번째 예정지였던 산 로렌조로 향했다.

 

 

산 로렌조는 Contact us 에서 주소 외에는 정보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메일조차 보내지 못했다.

 

단 하나의 단서, 화요일 저녁에 어셈블 회의가 열린다고 하였고,

다행히 누구나 그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고 홈페이지에 적혀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누군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곳으로 이동했다.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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