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6. 19. 수요일

[ 팬퍼시픽 호텔 ]

팬퍼시픽 호텔에서의 마지막 조식

  6월 19일 수요일. 여유롭게 늦잠을 잔 오늘은 하노이를 떠나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호텔 조식을 먹고 짐을 챙기며 베트남 탐방 일정들을 돌이켜보았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국하는 순간부터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문하는 기관부터가 외교부와 보건부, 병원, 사회적 기업이었으니 여행 느낌이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설렘과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할 의미 있는 곳들을 방문한다는 생각에 더 들뜬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탐방이 마무리된 지금, 머리와 마음이 모두 가득 차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탐방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해외에 나가는 그 자체이다. 우리는 해외에 나가 현지에서 직접 생활을 하고 실상을 보지 못한 채 그들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경험한 적이 있다. 특히 아직도 글로벌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 중에서는 충분한 현지/시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업화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뉴스 기사, 논문 등 글로만 접한 내용으로 문제를 추측하고 해결 방법을 탐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하는 것이 아닌 돈을 좇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 감히 한마디 하자면 적어도 세 번 이상은 현지에 나가서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을 하고 아이디어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현지에서 사용되지 않을 제품/서비스라고 판단되면 과감한 변화를 주거나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용자가 아닌 개발자의 입맛에 맞추는 건 회로 설계 없이 외형 디자인만 된 제품 프레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지를 방문하면서 경험하게 된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 내가 하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영향을 주고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혹은 팀끼리의 틀을 깨고 나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며 발전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청년이라면 누구나 SEEKER:S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점들을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 안

  6월 19일 수요일. 여유롭게 늦잠을 잔 오늘은 하노이를 떠나는 날이다. 마지막으로 호텔 조식을 먹고 짐을 챙기며 베트남 탐방 일정들을 돌이켜보았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국하는 순간부터 단순히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문하는 기관부터가 외교부와 보건부, 병원, 사회적 기업이었으니 여행 느낌이 없었던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설렘과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할 의미 있는 곳들을 방문한다는 생각에 더 들뜬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탐방이 마무리된 지금, 머리와 마음이 모두 가득 차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탐방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해외에 나가는 그 자체이다. 우리는 해외에 나가 현지에서 직접 생활을 하고 실상을 보지 못한 채 그들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주는지 경험한 적이 있다. 특히 아직도 글로벌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젊은이들 중에서는 충분한 현지/시장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업화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뉴스 기사, 논문 등 글로만 접한 내용으로 문제를 추측하고 해결 방법을 탐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하는 것이 아닌 돈을 좇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 감히 한마디 하자면 적어도 세 번 이상은 현지에 나가서 아이디어에 대한 검증을 하고 아이디어의 수혜자가 될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야 하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현지에서 사용되지 않을 제품/서비스라고 판단되면 과감한 변화를 주거나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용자가 아닌 개발자의 입맛에 맞추는 건 회로 설계 없이 외형 디자인만 된 제품 프레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지를 방문하면서 경험하게 된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이 내가 하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영향을 주고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혹은 팀끼리의 틀을 깨고 나와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며 발전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청년이라면 누구나 SEEKER:S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점들을 효과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 국제공항]

인천 국제공항으로 돌아온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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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8. 화요일

[Zó project]

완성된 더 종이의 모습

 

  6월 18일 화요일. 오늘은 3개의 사회적 기업에 방문하는 날이다. 물론 그 전에 Zó project에서 제작한 종이를 가지러 가야했다. 드디어 건조 과정까지 끝난 종이를 받아서 나머지 사회적 기업들에 방문하기 위해 찾아갔다.

 

 

[THE CRAFT HOUSE]

 

  3개의 기업이긴 하지만 그 위치가 하노이의 구시가지, 성요셉 성당 근처에 모두 모여 있어서 이동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먼저 방문한 곳은 THE CRAFT HOUSE로 이 곳은 베트남 최초의 현대 공예품 및 디자인 유통업체이며 현지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좋은 품질의 작품을 고객에게 선보이고 제공하는 곳이다. 이 곳은 베트남의 호치민과 하노이에 총 5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주요 고객은 관광객이다.

 

<인터뷰 내용>

 

THE CRAFT HOUSE의 설립 목적

THE CRAFT HOUSE는 베트남에서 디자인 활동을 하는 이들이 브랜드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다.

 

어떤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지

입점해 있는 브랜드는 다양하다. 커피, 차와 같은 식료품 브랜드를 포함하여 목공예 제품 브랜드, 패브릭 제품 브랜드 등 상품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브랜드가 전시, 판매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THE CRAFT HOUSE의 고객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념품이 아닌 브랜드를 걸고 판매하는 제품이면서 그에 맞는 품질을 보장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대부분의 고객은 주로 관광객이다.

 

 

위치 : 95B Ly Nam De St, Hoan Kiem District, Ha Noi City, Vietnam.

연락처 : (+84) 39 819 0919

홈페이지 : https://thecrafthouse.vn/

 

The Craft House - Ngôi nhà thủ công

The Craft House chuyên bán các mặt hàng thủ công, handmade, homemade vô cùng tỉ mỉ, mang dáng dấp của người Việt mà không kém phần tinh tế. Tại The Craft House bạn có thể mua được những món hàng được làm bằng thủ công hoặc các sản phẩm có nguồn gốc thiên n

thecrafthouse.vn

 

[Tohe]

  토헤는 2005년 응우옌, 응간, 투의 일행이 노인 및 혜택 받지 못한 어린이들을 위한 센터를 자원 봉사자로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어린 아이들을 위한 주말 미술 활동과 그림 그리기 세션을 조직하여 그들의 어려운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립한 회사가 토헤인 것이다.

<인터뷰 내용>

 

TOHE Style의 설립 목적

토헤는 고급스러운 상품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소박하고 환경 친화적인 상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매주 진행하고 있는 미술 활동을 통해서 불우한 어린이들이 순수성을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TOHE의 운영 방식

토헤는 베트남의 장애 아동의 예술 교육을 제공함과 동시에 아이들이 그린 작품을 패턴화 하여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이 수익금은 재능이 있는 어린이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 위해 쓰인다.

 

 

위치 : Cau Giay 지역, 8 Do Quang 길, 하노이

연락처 : (+84) 4 3775 4230

설립시기 : 2006년

홈페이지 : www.tohe.vn

 

Tòhe, Shop Tòhe: sản phẩm mang vẻ đẹp hồn nhiên, màu sắc tự do trong tranh trẻ em; Tò He: sân chơi sáng tạo nghệ thuật độc đáo

 

www.tohe.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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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7. 월요일

[Zó project 재방문] 

 

  6월 17일 월요일. 전 날 방문했던 더 프로젝트에 다시 방문했다. 예약했던 워크샵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체험할 워크샵은 베트남 전통 종이인 ‘더 종이’ 만들기 체험으로, 전체 일정 상 호이안까지 투어를 가서 종이 만들기의 전 과정에 참여할 수는 없어도 간소하게 체험할 수 있는 형태였다. 의자에 앉아 매니저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으니 체험을 위한 준비가 끝났다며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게 안에서 진행될 줄 알았으나 가게의 바로 앞 기찻길 옆에서 진행되는 것이었다. 더운 날씨를 걱정했지만 걱정도 잠시, 체험을 시작하자마자 집중하느라 더운 날씨는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체험을 시작하기 전, 전통 종이를 만드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들었다. 

 

 

체험 전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있는 메이데이 대표 박민석

  준비된 틀에 종이 물을 붓고 종이 내용물이 뭉치지 않게 손으로 잘 펴주면서 꽃으로 장식을 하고, 그 위에 종이 물을 다시 부어준다. 그렇게 틀 전체를 햇볕에 말려주고 떼어내면 꽃으로 장식된 ‘더’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국어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닥종이로 한지를 만드는 과정과 흡사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설명만 들었을 때는 너무 간단했기에 빨리 끝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물을 부을 때 쏟아져 나오는 종이 건더기의 양을 잘 조절해야 평평한 종이를 만들 수 있었고 너무 두껍게 만들거나 얇게 만들지 않도록 유의해야 했다. 생각처럼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체험이기에 우린 작은 종이를 몇 장 만들고 끝날 일이지만, 실제로 제작하고 판매를 하는 소수민족들은 이 작업을 며칠에 걸쳐 해낼 것을 떠올리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느꼈다. 더 프로젝트는 단지 전통 문화의 계승과 보존을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써의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을의 삶의 방식을 지켜주고 그들의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치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MEIDAY와 Zó project의 활동 분야는 각각 의료와 전통 문화 보존을 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는 사실만은 같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Zó project를 탐방 기관 중 하나로 선택한 이유다.

 

글자 수가 너무 많아 SEEKER:S의 SEEKER 까지 밖에 넣지 못했다

  꽃잎과 나뭇잎 등 자연적인 재료를 종이 사이에 넣어 데코레이션 하는 것은 꽤 즐거웠고, 이왕 만드는거 의미 있는 표현을 해보자 해서 SEEKER를 적어보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 더 프로젝트와 시커의 콜라보 느낌이 난다. 우리가 만들기 체험을 하는 동안 매니저님과 직원 한 분이 계속해서 설명과 함께 어려운 작업은 도와주셨고, 그 과정을 거쳐 드디어 종이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조 과정이 필요했기에 당장 가져갈 수는 없었고, 다음 날 다시 방문해서 건조된 종이를 찾으러 오기로 하고 일정을 끝마쳤다.

 

건조 중인 더 종이

 

위치 : 디엔비엔 푸 10A / 27 Đường tàu, số 8 Điện Biên Phủ, Hàng Bông, Hoàn Kiếm, Hà Nội

연락처 : (+84)366-602-928

홈페이지 : http://zopaper.com/

 

Zó Project | Vietnamese Traditional Paper | Social Enterprise Hanoi

Zó project is a social business, which preserves, supports and expands Vietnamese traditional paper and the technique to produce it in a sustainable and creative way.

zo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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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6. 일요일

[Zó project 방문]

Zó project가 위치해 있는 기찻길

  6월 16일 일요일. 우리는 Zó project 라는 사회적 기업에 방문하여  Zó project의 설립 목적과 운영 방식 및 프로젝트를 통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타겟이 누구인지 조사하고자 하였다. 위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하노이의 기찻길에 위치해 있어 찾기 어렵지 않았다. 하노이 외에도 호이안, 사이공, 나트랑, 푸꾸옥에 위치해 있다고 하니 하노이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을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접근하기 쉬울 듯하다. Zó project를 찾아가는 길은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양 사이드에 카페와 다양한 기념품 가게, 일반 주거 형태가 어우러진 정말 독특한 광경이었다. 물론 이색적인 모습과는 별개로 날씨가 너무 더워 기찻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Zó project 입구

  절반 정도 걸어서 들어간 무렵 마침내 Zó project 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했고 먼저 가게 안을 둘러보던 유럽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길을 지나가던 관광객들도 힐끗힐끗 한 번씩은 쳐다보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공방 느낌의 가게였다. 다른 관광객들이 모두 떠나고 난 뒤 메이데이 팀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협소한 공간이었지만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분위기로 느껴졌다.

 

Zó project 내부 모습.
엽서와 노트가 가득하다

  전시되어 있는 노트와 엽서에는 개성 있는 그림들이 가득했고, 그 곳에 있는 모든 제품은 종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천히 구경을 하던 중 가게의 매니저님께 인터뷰를 요청하여 Zó project에 대한 질문을 몇 가지 여쭤보았다. Zó project는 ‘더 프로젝트’라고 발음하며 베트남 전통 종이인 ‘더’를 제작하는 소수민족 사람들에게 이윤을 돌려주기 위한 전통 문화를 살리기 위한 기업이었다.

 

Zó project 하노이 지점의 매니저님 인터뷰

<인터뷰 내용>

 

수익금의 활용

Zó project의 이윤은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호아빈의 소수민족 마을로 돌아간다. 정확하게는 소수민족 마을의 사람들이 종이를 제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기여하도록 쓰인다.

 

Zó project의 타겟

Zó project의 제품은 현지인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하노이 기준 평균 월급 : 30-40만원). 보통은 관광객을 주요 고객으로 하며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직접 종이와 공예품을 만드는 체험을 하면서 베트남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견문을 넓혀주고 그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도록 체험을 구성하였다.

 

Zó project 워크샵 진행방식

캘리그라피와 간단한 방식으로 종이를 만드는 과정은 여기(Zó project 하노이 지점)에서도 가능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종이를 만드는 체험은 하루 일정을 잡고 호아빈에 직접 가야한다. 또한 각 파트의 마스터가 항상 상주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약 이후 워크샵을 진행할 수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매니저님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고, 덕분에 Zó project의 취지와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이야기를 듣고 워크샵 체험을 직접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되어 다음 날 바로 체험할 수 있는 워크샵 일정을 조율한 뒤 예약까지 완료하였다. 과연 베트남의 전통 종이를 만드는 과정은 어떨지 호기심을 가지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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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5. 토요일

[숙소_팬 퍼시픽 호텔]

  6월 15일 토요일. 이틀간의 일정을 수행하고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지 4일째, 머물고 있는 팬 퍼시픽 호텔의 라운지에서 인터뷰 자료를 정리하며 중간 점검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은 일정동안 방문할 베트남 하노이에서 활동 중인 사회적 기업들에 대해 조사하는 시간도 마련하였다.

 

  거의 40도에 육박하는 고온다습한 기후에 3일 만에 적응하는 것은 무리였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토요일부터 한 곳만이라도 사회적 기업에 방문해볼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날씨뿐만 아니라 빡빡한 일정까지 겹쳐 메이데이 팀원들이 메이데이를 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하루는 완충제 역할로 숙소에서 자료 정리와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진행된 해외 탐방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이틀에 걸쳐 방문한 병원에서 관계자 분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고, 뜻밖의 수요처를 알게 되어 제품 컨셉/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또한 메이데이 아이템의 테스트를 진행하며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테스트 베드 후보인 보나이 병원과 C 병원을 직접 방문해보고 아이템에 대한 확신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지만 그 중 가장 신기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수차례 시장 조사를 나갈 때마다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다르게 받고 매번 아이템의 발전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서인지 제품의 개발에 메이데이 2명의 팀원끼리가 아닌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품의 형태도, 원리도 첫 번째 출장을 나갔을 때와 여섯 번의 출장을 다녀온 지금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달라졌다. 제품 개발을 진행할수록 최종 아이템의 모습이 어떨지,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지 기대가된다. 

 

  남은 일정 동안 우리가 가 볼 사회적 기업은 Zó project 와 THE CRAFT HOUSE, Collective Memory, Tohe 총 네 곳이다.  조사에 따르면 Zó project의 경우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신청도 있어 가능하다면 체험에 참여할 예정이다. 조사한 내용은 일정을 수행한 이후 작성할 글에서 공개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만 여기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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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4. 금요일

[C 병원 방문]

 

  6월 14일 금요일. 숙소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 후 타이응우옌성으로 다시 향했다. 오전부터 C 병원에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C병원은 보나이 병원보다 500bed 더 큰 700병상 규모를 운영하고 있는 대형 병원이며 접근성이 좋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병원장 및 전문의, 약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기본적인 인터뷰를 진행함과 동시에 메이데이 팀의 목적과 개발 제품에 대해 소개하였다. C병원 관계자 분들은 미팅 내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며 제품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알고 보니 C 병원에서도 높은 습도로 인해 약을 폐기한 피해 사례가 있었고, 보나이 병원과 마찬가지로 한약 처방이 있었기에 말린 약재를 보관하는 용도로 전자동 진공 키트를 사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앞서 방문한 보나이 병원과 C 병원 모두 한약재 보관에 대한 니즈(needs)가 확인되었기에, 본격적인 제품 테스트를 시행하기 전에 제품의 형태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C 병원 의약품 보관실의 모습
C 병원 처방 창구의 모습
외래 진료 환자들이 처방받는 약국
약 처방 시 포장 방법_비닐팩에 포장

  1시간 정도 진행된 미팅을 끝내고 병원 내부 견학을 시작했다. 병원 로비와 약 처방을 해주는 처방창구, 외래환자 대상의 병원 부속 약국과 약을 보관하는 창고들을 우선적으로 둘러보았다. C 병원 역시 박스 단위로 약을 관리하고 에어컨이 설치된 공간에서 보관을 하고 있었다. 약 보관실은 두 곳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실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한 곳은 에어컨이 고장 나 정상적인 작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이렇듯 실제 상황을 둘러보니 C 병원 측에서 미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C 병원의 모습에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들의 환대가 반갑기도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눈에 보여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굳은 마음을 가졌다. 전 날 보나이 병원에서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C병원의 한약재 보관실을 둘러보면서 더 자세한 질문을 하였다. 한약재의 관리와 재고에 대한 인터뷰였다. 한약의 보관에도 사용될 것이 잠정적으로 확정되었고 병원 측에서도 한약 관리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기도 했기에 한약 관련 내용 위주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또한 병원의 규모가 큰 만큼 외래 환자를 위한 약국과 입원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 보관실이 분리되어 있었고, 병원 자체에 환자와 방문자의 수가 많아보였다. 대부분의 약은 수입된 약이었으며 그 중 한국에서 수입된 의약품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병원장님은 최대한 병원의 내부 실들을 꼼꼼하게 보여주셨으며, 그 덕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여 병원 견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C 병원 한약재 보관실의 모습

<인터뷰 내용>

병원의 규모와 환자의 수

700bed로 이루어져 있고 하루에 내원, 외래 총 500명의 환자를 돌본다. 그 중 외래 환자는 300명 정도 진료를 본다.

지금까지 약 보관 문제가 없었는지

높은 습도로 인한 약 손상이 있었다.

MEIDAY의 아이디어가 병원에서 활용될 수 있을지

전자동 키트와 같은 아이디어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물론 지금의 형태도 충분히 좋지만 병 형태의 보관 방식은 외래 환자에게 더 적합할 것이라 생각하고, 약제부에서 보관하고 있는 약은 타블렛 형태로 보관되고 있다. 타블렛 형태를 많이 담을 수 있는 박스형 제품을 제작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알약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약재 관리에 이 아이디어를 써보고 싶다. 어쩌면 양약보다 한약재에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약재는 한 봉지에 어느 정도 사용하는지?

한 봉지 당 일주일 정도 사용하는데, 최소 2~3일 내에 다 쓰기도 한다.

한약재의 종류는 어느 정도 되는가?

한약재 대부분의 종류를 들여오고, 처방한다. 대부분은 호흡기 질환 환자(천식)에게 전통약재 처방을 내린다.

약 처방 기간

일반적으로 일주일 정도 보관하지만, 만성질환자 같은 경우 최대 한 달 보관할 정도의 약까지만 처방하는 것이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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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6. 12. 수요일

[인천국제공항]

출발 당일 항공기 내부에서

  6월 12일 수요일. 베트남의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30분 정도를 차를 타고 이동해 숙소에 내렸다. 공항에서 나올 때는 미처 몰랐지만 숙소에 도착한 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면서 드는 생각이 ‘목적지가 하노이가 아니라 찜통 안이었나’ 싶을 정도로 높은 온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착한 날의 기온은 39도로 습도마저 높은 탓에 아마 몇 차례 방문한 베트남의 기온 중 가장 높은 온도였지 않나 생각된다. 숙소로 짐을 옮기는 그 잠깐의 순간에 온 몸이 끈적끈적한 땀으로 뒤덮였다. 예상보다 더운 날씨에 이번 일주일의 일정을 걱정하면서 그와 동시에 다음 날 방문할 기관에 연락을 돌리며 도착한 날의 일정을 마감했다.

 

 

2019. 06. 13. 목요일

[외교부 방문]

타이응우옌성 외교부 방문

[보건부 방문]

타이응우옌성 보건부 방문

  6월 13일 목요일. 오전 일정을 위해 이른 아침 일어난 메이데이는 타이응우옌성에서 진행될 미팅을 위해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를 차로 이동했다. 타이응우옌성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 바로 동북쪽에 가장 인접해있는 성으로, 우리나라와 비교해 설명하자면 경기도 정도로 보면 된다. 오전 9시에 진행된 첫 일정은 타이응우옌성의 외교부와 보건부에서 병원 방문 일정에 관해 설명을 듣는 미팅이었다. 이 미팅을 진행하게 된 이유는 현재 메이데이 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인 전자동 진공 키트 VAKI(Vacuum kit)를 대형병원에서도 사용이 가능한지, 그렇다면 대형병원도 규모별(각각 200bed, 700bed)로 피해 정도와 사용에 대해 니즈(needs)가 다른지, 그리고 현지 전문 의료진이 유저(user)의 시각으로 본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이다. 

 

[점심식사]

미팅 이후 다같이 베트남 현지식 점심식사를 즐기는 모습

[보나이 병원 방문]

타이응우옌성 보나이 병원의 배치도

  가장 먼저 방문하게 된 병원은 타이응우옌성에서도 산을 넘어 훨씬 더 들어가야 하는 보나이 병원이었다. 좁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지나 긴 이동 끝에 도착한 보나이 병원은 200bed 규모의 작지 않은 병원이었지만, 건물과 의료시설은 국내에서 같은 200병상 규모의 병원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내리자마자 여러 개의 동으로 나뉜 수평형의 낮은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엄습해오는 습한 기운. 산 속이라 그런지 시내에 있을 때보다 훨씬 습하고 모기와 같은 날벌레들이 많았다. 같이 동행해주신 국내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시설이 좋지 않아 분명 감염 문제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보나이 병원 방문은 비단 약 손상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슈들을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였다. 보나이 병원의 병원장님과 의사, 간호사, 약사 분들, 그리고 메이데이까지 양측의 소개가 끝나고 제품과 관련 이슈에 대해 피티를 진행하였다. 회의실에서 진행된 피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의료진 분들과 함께하는 병원 견학이 시작되었다. 

 

보나이 병원 회의실에서 의료진과 함께 미팅을 진행하는 모습
태블릿 형태로 보관되는 약의 모습

<인터뷰 내용>

전자동 진공 키트를 사용하게 된다면 원하는 사이즈가 있는가

타블렛 형태의 약을 담을 수 있는 사이즈를 원한다.

왜 큰 사이즈를 사용하고자 하는지

작은 사이즈를 사용하게 되면 한 번에 보관하기에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스 형태로 최대한 크게 만들어주면 좋겠다.

일반적인 보관환경은 어떻게 되어있는가

에어컨이 설치가 잘 되어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이 형태로 보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성질환 환자들의 경우 처방은 어떻게 하는가

많은 약을 한 달에 한 번씩 처방한다.

한약의 경우 어떤 환자들이 주로 처방 받는가

대부분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 혹은 뼈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전통약재를 처방한다.

약을 하루에 얼마나 사용하는지

보통 100box 사용한다. (100box = 2 or 3 template)

 

보나이 병원의 모습

  여러 분동으로 이뤄진 병원의 구조는 걷다보니 흙길을 밟기도 하고 비가 오락가락하던 터라 물웅덩이를 밟는 일도 있었다. 환자들의 이동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전문 의료진으로써 동행해주신 박현하 임상영양사님께서 병원 내에 식당이 따로 있는지 환자들의 식이에 관련된 질문을 하시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나이 병원은 입원 환자들을 위한 식당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그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병원 아래에 위치한 외부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식이 조절이 필요한 환자들도 적절한 식이요법을 병행한 식사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약을 보관하는 실에 도착했고, 개방적인 다른 공간과 달리 에어컨이 설치된 장소에 약을 보관하는 모습을 보고 보나이 병원 나름대로 약을 적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공간에 보관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 보관실 관리자의 설명을 들어보니 에어컨이 고장 날 경우 별다른 대처 방안이 없고, 에어컨만으로 완벽하게 약을 적정한 온/습도에서 보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확실히 습기를 잡기 위해서는 에어컨이 아닌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점점 축축해지는 온 몸으로 느꼈다.

 

 

 

한약재가 보관되는 실에서의 인터뷰

  약 보관실을 둘러보고 견학이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병원장님께서 한약재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주셨다. 단순히 약 보관에 중점을 뒀기에 한약재 보관에 사용을 하고 싶다는 의견은 뜻밖의 피드백이었다. 한약을 보관하고 달이는 곳을 살펴보니 뚜껑이 덮인 파란 양동이에 한약을 종류별로 보관하고 있었지만 실 자체에 에어컨 등의 냉방 시설이 구비되어 있지 않았으며,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던 터라 실 내부의 공기는 매우 습했다. 건조된 약재에 곰팡이가 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확실히 한약재 보관에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은 되었다. 문제는 한약재는 물론, 알약을 보관하는 형태가 약병보다 타블렛 형태가 많아 대량으로 보관하기에는 기존에 개발한 키트의 병 사이즈가 적절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프로토타입 제작 시 사이즈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고 한약 보관실을 둘러본 뒤 보나이 병원에서의 일정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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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2019 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의 해외탐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최종 탐방계획을 점검하고, 탐방 이후 성과 공유 계획을 설계했던 지난 5월 29일 SEEKER:S 발대식 현장을 돌아보며, 앞으로 2개월 동안 이어질 10개 팀의 해외탐방에 응원을 보내려 합니다.

 

3월 오리엔테이션 이후 오랜만에 SEEKER:S 팀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해외 탐방 준비를 위해 국내에서 전문가 인터뷰, NG0/선배기업 방문, 포럼을 통한 의견 청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한 액션 프로젝트 결과를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정·발전된 최종 탐방계획을 공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멘토들이 추천해주신 유관 기관을 중심으로 인터뷰·조사대상을 확장하고, 자체 스터디와 포럼을 조직하여 고민의 깊이를 더한 팀들의 액션 프로젝트는 ‘성실한 수행이 돋보인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액션 프로젝트는 주요 탐방지와 핵심 질문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현재 팀에게 좀 더 시사성이 높은 주제와 탐방지로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SEEKER:S 발대식에 함께해주신 네 분의 멘토들은 팀들의 유익한 탐방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주셨습니다. 문화·예술, 환경·보건·적정기술, 도시재생의 3가지 테마에 따라 주제별로 염두에 두어야 할 공통 사항과 함께 각 팀의 계획에서 보완되어야 할 점을 짚어주셨습니다. 도시재생의 경우 민·관을 아우른 다양한 당사자들을 모두 만나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시면서, 공간 중심의 탐방계획과 코뮌 체험 등 프로그램 위주의 탐방계획을 세운 두 팀이 서로의 계획을 참고하여 보완을 이루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팀들 역시 “탐방 성과 공유를 위한 청년 포럼을 콜라보로 개최한다면 어떤 팀과 함께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피드백을 교환하였습니다. 동일 주제에 속한 팀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공유공간과 장례문화, 진공키트 적정기술과 패턴 디자인 등 경계를 뛰어넘어서도 공통의 관심사와 협력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멘토단은 탐방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당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선진 사례를 대할 때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의 차이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바탕이 되는 역사적 맥락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동적인 학습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만의 경험을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한국을 비롯해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후발 국가들에게 적합한 모델을 상상해내는 역할도 기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 세계 곳곳에서 SEEKER:S 팀들이 펼쳐낼 뜨거운 상상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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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금)부터 17일(일)까지 2박 3일간 ‘2019 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이하 SEEKER:S)’ 오리엔테이션이 양평 현대블룸비스타에서 열렸다.

이번 오리엔테이션은 향후 1년간의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반적인 활동 계획, 준비 사항 등을 함께 점검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1. ‘끝장’토론을 맛보다, 피어멘토링(Peer Mentoring)


이번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세션으로 꼽힌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서로에게 집요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으로 진행된 피어멘토링이었다.


이번 피어멘토링은 청년 창업팀에 대한 애정 하나로 한달음에 양평을 찾아주신 오승훈 서울시 지역상권활력센터장의 주재하에 이루어졌다.






멘토링이 시작되자마자 송곳같이 날아들던 오승훈 센터장의 질문은 피어멘토링의 마중물이 되어 활발한 토론을 이끌어냈다. ‘풀고자 하는 문제가 누구의 문제인 것이죠?’, ‘해당 탐방지역을 다녀오는 것이 이후 기업에 어떻게 적용이 되나요?’, ‘해답을 찾기에 앞서 기업이 세운 가설이 무엇이죠?’ 등 본질적인 질문 앞에 청년 창업가들은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긴장도 잠시, 그것이 완벽한 해답이 아닐지라도 그간 사업을 운영하며 팀원들과 함께 도출해 온 문제의식과 솔루션에 대한 답들이 소신 있게 이어졌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동종업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들도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조언을 주는 등 6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피어멘토링이 끝난 뒤, 참여 기업인 ‘꽃잠’의 유종희 대표는 “당연히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두고 그것이 왜, 누구에게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당황스러웠다”며 “하지만 답변을 하지 못하거나, 논리가 막히는 지점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다양한 전문가 및 수혜자 인터뷰가 필요하겠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2. 쉽게 보여주지 않는 것을 발굴하라!_생생농업유통 김가영 대표


이튿날에는 세 개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 중 생생농업유통의 김가영 대표가 진행한 강의는 이른바 ‘뼈때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어져 펠로들의 공감과 궁금증을 이끌어냈다.






김가영 대표는 사회적 가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철저하게 고민해야 했던 ‘소녀방앗간’의 첫 시작을 구체적인 사례와 경험을 통해 전달했다. 특히, 곧 탐방을 떠나게 될 팀들인 만큼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답은 홈페이지나 인터뷰만 찾아봐도 금방 찾을 수 있다”며 “이러한 뻔하고 식상한 답을 찾으러 떠나지 말고, 정말 사업에 도움이 될만한 컨텍포인트와 계기를 만들어오겠다는 각오로 부딪친다면 앞으로의 과정에서 톡톡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응원의 말을 전했다.



3. 선배 탐방가가 전하는 ‘SEEKER:S를 대하는 자세’

_동네방네협동조합 조한솔 대표,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 김현주 상무이사


앞선 강의들이 톡톡한 인사이트를 주었다면 해외탐방을 성공적으로 마친 선배 기업가들의 강연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가장 와닿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해외탐방을 다녀온 동네방네협동조합의 조한솔 대표는 “냉정한 말이지만, 답을 찾으러 간 곳에서 오히려 길을 잃고 돌아올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조언으로 강연을 열었다. 이어 조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문제 정의도 완벽하지 않았고, 어쩌면 언제든 길을 잃을 준비가 되어있는 팀이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탐방을 하며 팀원들과 지칠 때까지 논의를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을 해왔던 것이 자양분이 되어 지금까지도 살아남은 팀이 되었다.”고 말해 탐방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강연을 이어받은 우리동물병원생명사회적협동조합의 김현주 상무이사는 당시의 탐방 목표, 계획, 실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때, 짧은 해외 일정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한국에서 웬만한 자료나 논문은 다 찾아보고, 거기에 없는 답을 쏙쏙 골라 전문가를 만났다는 대목에서는 참가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행여 잊어버릴까 매일 촬영과 기록을 진행해 탐방이 끝났을 때 무려 160쪽의 결과보고서가 나왔다고 밝혀 당시의 열정을 가늠케 했다. 김현주 상무이사는 “사업이 어느정도 진척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결과보고서를 참고하고, 캐리어 두 개에 가득 채워왔던 해외단체의 브로슈어나 간행물을 들춰볼 때가 있다”며 “당장은 적용이 어려운 정보더라도 각 팀이 세운 가설과 방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들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오기 때문에 꼼꼼히 준비한 뒤, 치열하게 확인하고 오시길 바란다”고 당부하며 강연을 마쳤다.



4. ‘친해지길 바라’, 다양한 레크레이션 현장


모름지기 오리엔테이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레크레이션이 빠질 수 없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강연과 멘토링에 뻣뻣해진 몸을 풀기도 하고, 상호보완적 토론을 위해 낯가림의 벽을 허물 수 있도록 돕는 간단한 활동들이었다.








5.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며


2박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 것은 해외탐방은 물론이고, 그 전에 진행되는 액션 프로젝트 및 멘토링만으로도 성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는 점이다.






‘SEEKER:S 청년, 세계에서 길을 찾다’는 단순히 해외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 탐방을 통해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들만의 명확한 기준과 가설이 필요하다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느 때보다 명료한 방향성을 찾은 팀은 보다 단단해진 표정으로 귀갓길에 올랐다.


각 팀이 앞으로의 9개월 동안 국내외 곳곳을 누비며 마침내 찾아 나갈 길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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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탐방] 3. Portland City Neighborhood Involvement

 

지금까지 청풍상회가 방문한 구역들을 통해서 포틀랜드의 지역/구역 발전은 시나 정부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시에 제안하여 동네가 발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탐방전과 탐방을 하면서도 이런 참여를 하게 된 근원 배경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었고,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포틀랜드 주민참여과를 방문하게 됐다. 시청에서 만난 폴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자 다른 나라에 있는 하나의 파트너로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폴과의 이야기는 정리하는 것보다 인터뷰 전체를 싣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인터뷰 올린다.



청풍 : 이곳이 어떻게 젊은 사람들이 오고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했는가에 대해 듣고 싶다. 어떤 성장과정을 겪었는가?

 

: 1960~70년대 뉴욕이나 다른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이곳에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기대감들이 있었다. 환경론자들은 환경을, 어떤 이는 작은 농장 꾸리기, 작은 창업 등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했다. 현재는 일자리가 없어도 이곳에 온다. 그래픽, 디자인, 음악이나 수제맥주 제조, 예술활동 등을 하면서 소규모 창업들이 생기고 있다. 포틀랜드는 큰 규모의 사업이 없다(실제로 대기업들이 동네에 들어서는 것에 대한 규제는 존재한다.) 그래서 소규모 창업을 하기 좋다. 정치적으로도 의사표명에 큰 제재 가 없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와도 적응 쉬운 환경이다. 어린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함으로써 만족도가 높다. 다만 많이 오다보니 주거의 문제가 좀 생기는 편이다. 월세아파트 찾기가 힘들다. 그러나 앞으로도 포틀랜드로 20만 명 정도가 더 올 것이다.

 

청풍 :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정부에서 주민의 참여를 이끌기 위한 일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60~70년대에서도 모든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시작을 하지 않았음에도 포틀랜드는 주민참여가 시작되었는가?

 

: 복잡한 요인이 있다. 그 당시 역사적으로 월남에 대해 많은 불신 있었고 인종, 여성인권 등 정부주도에서 시민들 스스로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실현하는) 찾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부에 의존을 하는 것 보다는 스스로 해야겠다는 생각들이 생겨났다. 다른 곳도 그러 하지만, 포틀랜드의 경우 활동가들이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보수적인 사람들이 떠나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도시가 변하게 되었다. 매우 중요한 것은 시의 건축, 주택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부분에서 눈을 떴다. 예를 들어 주택과 스몰비즈니스 등에 서로 얽혀있는 부분(Velo Cult처럼 펍과 자전거숍이 같이 운영되는)에 대해서 규제를 많이 풀었다.

 

  포틀랜드 시에서 주도적으로 주민들이 할수 있도록 노력한다. 공원, 영화, 작은 규모의 돈에서 큰 규모까지 예술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고 있다. 이곳은 개개인이 모여서 빙고 등 재밌는 게임을 한다. 거리축제, 뮤직페스티벌, 먹거리 장터 등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주최하는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무엇을 함께 하고 싶은지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제기하고 고칠 수 있도록 노력도 함께한다. 여러분들도 할 때 자리를 지속적으로 모아서 제공을 해보아라. 예를 들면 광고판 등을 활용해서 또 본인들이 무엇을 바꾸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용도 함께 적어놓으면 좋겠다. 여러분들 중에서는 누군가 계기를 만들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모아서 펀딩(모금)을 할 수도 있다.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새로운 일들이 생길 것이고 좀 더 나아질 것이다.


  많은 돈이 필요 하겠지만, 지역사회의 유지나 돈 있는 사람들을 설득시켜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큰돈이 아닌 작은 돈이라도) 성공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심어 줘야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약점은 돈만 가지고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성공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실패 사례가 많으면 물론 좋지 않다. 작은 지역에서의 큰 성공이 더 큰 영향력을 줄수 있다. 영향력을 주는 부분에서는 작은 커뮤니티가 더 유리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을 발전할 수 있는 작전을 생각을 해보고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의견을 존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자리 정부를 생각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끄는 사람이 누군가를 보면서 생각한다. 현재 포틀랜드에서는 그러한 리더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어떠한 커뮤니티이고, 그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작은 단위에서부터 Bottom to the Top!


청풍 : 한국은 여전이 상의하달식의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 상황을 아래에서 위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

 

: 어른과 아이처럼 어디든 마찬가지다. 긴장관계에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힘을 가지는 것이 정부에서 독립하는 길이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힘(무기,장점)으로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힘을 한번 쥐고 있는 사람이 놓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 이름, 법등도 주민들이 정하도록 했다. 포틀랜드 정부가 한 것은 들어주던 것, 한 사람이 시도해서는 안 되고, 여러 사람들이 다가가서 접촉을 하면 가능하다. 스스로 과연 누가 그곳을 지킬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라.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을 시켜라, 정치적인 이용으로 가는지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봐야한다. 엄청 큰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말만 시끄럽고 변하는 것이 없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행동하라. 리더가 되어라 함께 가야 한다. 지역의 활용 가능한 자원들을 사용하라.(비정치적으로) 그전에 미 정부는 잘못되고 있다고 불만만 얘기했지 (실제 변화를 위한 행동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시사점

 


  우리가 하고자는 방향을 실천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에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인터뷰라기보다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는 듯한 인터뷰였다. 그 동안 청풍상회가 강화도에서 장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선뜻 뜻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쉽사리 던지지 못했다. 자신감의 문제인지 겸손의 문제인지 누군가 우리에게 제안을 했을 때도 쉽게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폴과의 인터뷰에서 함께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옆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확실한 비전을 가져야하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야함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포틀랜드의 주민참여는 시대적, 사회적 배경의 다름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지금의 포틀랜드를 만든 것은 아니다.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만남과 대화가 있었기에 지금의 포틀랜드가 만들어졌고, 우리가 포틀랜드 동네들의 모습을 닮기 위해선 그만큼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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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풍물시장에서 모여서 피자를 굽기 시작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우리는 강화도에서 사람을 만나러 다니고, 사람을 모으는 만나는 일을 해왔다. 그리고 하루에 한 판이라도 팔아보자는 시작부터 지금은 그래도 강화풍물시장의 좀 이상한 것을 파는 곳이 되기까지 불확신으로 가득한 눈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기억하고 반기는 시간을 보내왔다. 많은 친구와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떨어져 사는 우리에게 아삭아삭순무민박은 우리에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우리가 살고 하는 일에 대해, 또 우리가 삶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강화도라는 이 공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공간이자 휴식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처음 그 때 가졌던 불확신으로 가득한 눈은 여전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삶과 강화도에서의 변화를 만들었는가에 스스로 물어본다면 이제 시작이지 않을까한다. 이곳에서 살아보자는, 함께 살아보자는 마음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것을 위해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다.





 


 킨포크, 포틀랜드 블레이져스, 데미안 릴라드, 근데 거기 뭐하는 곳이야? 우리가 포틀랜드를 가려한다 했을 때, 주변인들이 말한 단어는 손에 꼽히는 단어들로만 정리가 되었다. 아이스크림으로 동네를 즐겁게 해주는 곳, 맥주 한 잔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곳이라고 설명을 하고 우리는 그곳을 가서 어떻게 그런 도시가 만들어졌는지 보려고 한다. 서로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생각으로 가지고 자라온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문화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지켜왔는지를 보고, 우리가 보내온 시간의, 우리가 모여 지역에서 강화도에서 정착하고 건강한 지역문화를 만들자며 나눠왔던 이야기들의 포틀랜드에서 이어가고 얻어가려 한다.


 우리는 포틀랜드 내의 동네 구석구석을 뒤져가며, 지역을 즐겁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가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가 어떤 가치관으로 그들이 동네에서 살아가고 동네주민들과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내는가를 보고, 각 동네가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네협의체들을 만나서 지역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네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배울 것이다. 또한 같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있으면서 오래전부터 다른 가치관을 내세우며 주민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포틀랜드 주정부를 찾아가 그들이 성장해온 배경을 통해 전혀 다른 문화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지역에서의 시작점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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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가 어떻게 갔는지 실감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2주가 2달같이 느껴졌지만, 돌아와서 자료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 2주라는 시간이 꿈같이 느껴진다. 영국 런던, 브라이튼,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를 오가며 총 12개의 기관, 9명의 담당자를 만났다. 개인사 및 시각예술 아카이브 중심의 탐방기관들이 주를 이뤘던 영국, 시니어를 위한 전시 ‘시간과의 대화’를 거쳐 독일에서의 최종 탐방지인 ‘유대인 박물관’은 영국과 독일에서의 경험을 모두 모아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탐방을 통해 반갑고 유익했던 기관 방문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의 다양한 문화도 접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팀장 박소진

 

  2015년 6월 15일 기억발전소는 런던으로 떠났다. 5개월간 늘 매일의 체크리스트에 자리하던 시커즈. 그간 마음 한켠에 두고두고 쌓아두었던 묵은 보따리를 풀어낼 시간이었다. 돌아오면 마무리 되어있을 전시 준비에 한창 정신을 쏟아 떠나기 전 날의 설렘을 채 느끼지 못했다. 길고 긴 1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런던에 도착하니 한국의 가을처럼 날이 참 맑았다. 미리 예약해둔 숙소로 가는 길에 자그마한 카페와 상점, 성소수자들을 위한 서점,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가 자리해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인생학교’ 앞에서 우리는 시커즈 탐방길의 첫 날이 훗날 우리 인생의 소중한 이정표였을거라 기대했다.

  15일의 일정 중 하루 하루가 소중했고, 방문한 기관들 역시 많은 시사점을 남겼지만 기억발전소의 비즈니스 차원에서 큰 수확이 된 주요 기관들이 인상깊게 남아있다. 런던에서의 첫 주요 목적지는 영국국립기록보존소(The National Archives)였다. 오기 전 출장으로 국가기록원에 다녀왔던터라 차이점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접근성은 두 나라 모두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곳이 훨씬 개방적이고, 활기차다. 예상대로 가족사 파트가 인상적이고, 뿌리를 찾으려고 가족이 총 출동한 시니어 무리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오기 전 우리가 주목한 아카이브(역사/개인사) 를 활용한 워크숍, 그리고 그 결과들을 바탕으로 짜게 될 비즈니스 툴이 떠올랐다. 식민지와 피식민지 각각의 입장에서 봐야할 아카이브 큐레이션을 고민하게 되었다. 3일차에 방문했던 오토그라프 에이비피(Association of black photographers)는 1980년대 흑인 사진가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지원하려 세워진 곳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흑인'이라는 단어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냄으로써 사회적 정의와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에 대해 다시 되묻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특히 '시각예술'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이번 탐방 기관 중에서 가장 이미지를 중요 매개로 활용하는 단체였기 때문에 ABP의 활동에서 기억발전소가 배워야 할 점은 많았다. 특히 시각예술분야이기 때문에 사진가, 예술가들이 개인사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소수자의 문화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 사진과 소수자의 기록을 연결하여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방법들이 다채로웠다. 사실 ABP의 활동도 초창기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확장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진만 고수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만큼 강력하게 관객에게 다가가는 매체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동의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PYMCA(Photographic Youth Music Culture Archive)의 유스클럽(Youth Club)는 말 그대로 청년문화와 서브컬처, 라이프스타일, 음악, 패션 등의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로 6만 점의 사진을 포함하여 아직 스캔되지 않은 15만 점 이상의 이미지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문화연구와 전시 등을 진행해왔다. 초기에는 매거진으로 시작되어 이미 쌓아놓은 다량의 사진 아카이브가 있기 때문에 사진을 다루는 방법이나 주목하는 점이 우리와 교차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곳은 영리영역으로 사진 에이전시와 같이 운영되는 PYMCA, 비영리 영역으로의 Youth Club 두 개의 이원화 시스템으로 접근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향후 기억발전소 운영체제의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런던박물관(Museum of London)의 경우 서울역사박물관과 비슷한 포맷으로 런던의 역사를 상설전시로 구성 해놓았고, 근대에 와서는 시민 인터뷰 및 구술기록물, 현대 예술 작품을 곳곳에 비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게 디스플레이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상설전에 기획전을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크게 다른점이 있다면, 1976년 개관하여 1980년대부터 런던 주민들의 개인사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TF팀이 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물건을 주로 수집한다면, 이곳은 구술 인터뷰 및 기타 등등의 자료를 함께 수집한다.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인서울 프로젝트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하는 형태라는 생각이 들면서, 국내 기관들에도 충분한 인적, 물적자원이 있는데 그 사이 사이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한 지점이 아쉬웠다. 오히려 이 사이에서 기억발전소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개인의 입장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메모리인서울 프로젝트가 좀 더 캐주얼한 느낌이라면, 이곳의 런던기록보관소(General Museum of London Recordings) 같은 경우는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발언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40여년 가까이 쌓여온 자료들을 위한 아카이브실을 따로 운영한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있는 지점인 것 같다. 2000여건, 5000시간 이상에 달하는 구술기록물이 다양한 사람들을 채록하지만 주로 소수자(런던 항구 노동자, 흑인노예, 현 이주 다문화 등)들의 삶을 카테고리화 시켜 모아두었다. 기억발전소에서 개인사 아카이브를 다루면서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 개인정보(저작 및 초상권)에 대한 것인데, 영국도 기관별로 그 지점을 해결하는 방식과 지침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영국에서는 그 중심에 '윤리적'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 부분을 국내적용 시킬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보였기 때문에, 아카이브를 다루는 입장에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튼의 서섹스 대학(University of Sussex)에는 MOA(Mass Observation Archives)과 The Keep에서 가장 크게 기록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체감했다. 탐방기간동안 둘러본 the National Archives나 British Library, Museum of London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과거의 자료를 찾고, 자신의 삶의 조각을 찾으려는 시니어가 많이 있었다.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고 찾아보는 것을 '취미'라 말하는 시니어 자원봉사자의 말이 인상깊게 남았는데 영국은 이것이 가능하도록 아카이브 시스템이 갖춰져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MOA에서 열린 소규모 아카이브 워크숍에서도 The Keep Archive의 자료를 최대한 잘 활용하여 참가자가 직접 자신의 뿌리-인물이나 장소를 찾아갈 수 있게 길잡이를 해주어 전반적인 기록문화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일정이 개인사 아카이브와, 아카이브의 시각예술분야로의 활용법에 주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면, 독일에서의 일정은 시니어의 기억을 아카이빙하는 기존의 기억발전소 컨텐츠를 전시의 형태나 워크숍 등의 비즈니스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주요 초점을 맞추었다. 베를린 소통 박물관(Museum für Kommunikation)에서는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Dialogue Social Enterprise)가 주관한 시니어 체험 전시 ‘시간과의 대화’를 둘러보고 전시담당자와 시니어 가이드에게 전시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에는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의 본사가 있는 함부르크로 이동해 CEO인 안드레아스 하이네케(Andreas Heinecke)와 COO, 오르나 코헨(Orna Cohen)을 만나 기억발전소에 대한 소개를 하고 전날의 전시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과의 대화’ 기획 과정, 한국으로 전시를 들여오는 절차와 전시 워크숍들에 대한 논의를 했다.
  함부르크에서 돌아오는 길 ‘시간과의 대화’를 그대로 들여오는 방식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기억발전소의 자체역량을 고민하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구체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 협업할 수 있는 기관을 만나 실행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재설정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역시, 이번 전시를 기획하는 것에 있어 자금 조달부터 전문가 컨설팅, 기관 조율까지 2년여 시간이 걸렸다는 조언을 주었다.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조차 상설전시로 지속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들여오는 절차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전시 자체에 대한 명확한 목적성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자료로만 경험했던 전시를 직접 경험하니 생각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6개의 방으로 구성된 전시 콘텐츠 중 기억발전소의 미션과 가장 부합하는 콘텐츠는 1개의 방으로 시니어 가이드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관람객에게 설명하고, 나이들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이미지를 활용해 함께 나누어가는 테마였다. 이는 기존 기억발전소의 <기억의 지도>와 흡사한 형태로서 우리 컨텐츠가 전시의 형태로 개설되어 관람객이 있고 대상층이 다양하고 1:1로 만날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을 띄지 않을까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주었다. 또한 <기억의 지도>를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온 시니어 강사 양성이 ‘시간과의 대화’에서는 시니어 가이드의 양성과 교육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 또한 전시를 통해 시니어 가이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정서적 교감’을 체험했기에, 향후 컨텐츠 제작 측면에서 역량있는 시니어 강사 교육을 가장 염두해야 할 부분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대인 박물관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파장이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가장 잘 보여준 마지막 탐방지였다. 조용하지만 상징적 장치들로 관람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축 설계가 인상적이었고, 그 안을 채우던 희생자들의 일기, 편지, 앨범과 같은 평범한 삶의 기록물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기록이 가진 그 자체의 힘에 대한 어떤 믿음을 주었다고 해야할까. 탐방 기간 매일 저녁 침대 맡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지속적으로 자문하던 것은 탐방지와 한국사이 좁힐 수 없는 전반적인 ‘문화적 차이’에 대한 것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만의 적용 방식이었다. 문화적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한국적인 방법이 ‘시간과의 대화’ 같은 전시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기억의 지도’ 같은 출판의 형태, 때론 ‘MOA' 같은 교육이 될 수 있지만 좀 더 넓고 멀리 다양한 기록 문화를 확산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번 탐방의 최종 숙제가 될 것 같다.
  씨커즈가 이번 탐방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다음 목적지를 향한 지도와 나침반이다. 돌아와서 떠나기 전 했던 고민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탐방 후 받은 많은 영감들을 개인사 아카이브, 시니어 아카이브의 영역에서 어떻게 ‘기억발전소화’ 시킬 수 있는지, '기억의 풍년' 속 에서 기억발전소가 바라보고 공유하고자 하는 지향점과 목적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발전소의 구성원으로서의 배움과 함께, 개인으로서 나의 역량을 시험하고 체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생은 늘 후회의 연속이라고 무탈하게 잘 다녀온 탐방이라 할(볼) 지라도, 보고서를 작성하는 오늘도 돌이켜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내년에 참여할 팀에게는 꾸준한 영어 공부와 함께 탐방에서 만날 모든 이에게 깊이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전조사를 당부하고 싶다.

 

 

 

 

팀원 전미정

 

  처음 유럽에 갔던 것이 2007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갔던 그 때, 런던과 베를린은 거의 여행의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었다. 기차를 타고 넘어갔으니 베를린을 먼저 거쳤고 런던은 프랑스에서 도버해협을 배로 건너 도착했다. 벌써 거의 8년이 된 때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할 법도 하지만 추운 계절, 그때의 런던과 베를린이 너무 쌀쌀하고 어두웠다는 것만은 생생하다. 그랬기 때문일까? 탐방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생각하니 기억 속의 두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곳은 이미 익숙한 곳이지만 생전 처음 가는 곳처럼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국 직전까지 어쩜 그리도 무수히 많은 사건이 터지는지. 일단 시원치 않은 허리가 장거리 비행을 앞두고 가장 큰 복병이었고, 대한민국은 중동발 호흡기질환의 확산으로 아비규환이었던 데다가, 6월 15일 출국일 직전까지 우리는 밤을 새며 서울도서관에서 오픈할 전시 콘텐츠를 디자이너와 수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비행기를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항에서 보딩을 앞두고 있자니 마음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예전에 출장으로 여러 사람들과 해외에 간 적은 있지만, 동료이자 식구이자 동생 같은 기억발전소의 소진, 원영과 함께 꽤 먼 곳으로 함께 떠난다는 사실은 정말 새로운 기분이었다. 굳이 ‘팀워크’라는 단어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서울에서, 익숙한 일의 패턴 속에서의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환경, 완전히 다른 경험 앞에 함께 놓이게 될 것이고 그 와중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게 될지 너무 설레고 긴장되었다. 물론 이런 긴장감도 비행기 좌석에 안착하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지면서 곧 사라졌지만 말이다.
  런던에 도착하고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행운의 여신이 있다면 우리 편이었을까? 도착해서부터 런던을 떠날 때까지 하늘은 맑고 공기는 선선했는데, 과연 이곳은 심술궂은 날씨로 악명이 높은 런던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런던의 친구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전날까지 비가 불고 바람이 거셌다며 우리에게 “Lucky” 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은 기분은 탐방 기간 내내 우리를 감쌌다. 숙소 근처에는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School of Life)’가 자리 잡고 있어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고, 계획대로 탐방을 진행하면서 책이나 잡지에서 보았던 지금 이 시대의 트렌드를 눈으로 확인하며 문화예술계의 흐름이나 방향에 대해 온 몸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계획에 없던 체험을 하게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브라이턴에서는 개인사 아카이빙의 대명사 KEEP과 Sussex 대학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설명하기 힘든 공감대가 형성되어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독일로 넘어가서는 Dialogue Social Enterprise의 CEO, CCO가 베를린으로 넘어올 수 없다고 하여 함부르크로 가야했는데, 바뀐 일정 안에서도 본래의 계획대로 <Dialogue with Time>을 체험하고 유대인박물관까지 무사히 둘러볼 수 있었다. 런던에서 일주일, 브라이턴에서 사흘, 베를린에서 나흘. 심사숙고해서 짠 일정을 알차게 수행해내 뿌듯했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전시회도 잘 오픈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돌아와서 보니 씨커즈를 통해 탄탄히 세운 계획은 커다란 틀이자 방향키였다. 더 이상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짰던 계획이었으니 여유시간은 거의 없는 셈인데 그 와중에도 우리의 레이더를 타고 들어오는 아주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기억 세포에 생생하게 새겨졌다. 그래서 이후에 탐방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여행과 탐방이 사실은 한 끝 차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출장, 탐방, 과제, 보고서…. 이런 단어들을 생각하면 당장 머리가 쥐가 나고, 피곤한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우리가 원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궁금한 것, 더 알고 싶은 것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타지에서의 피곤한 일정은 순식간에 설레고 신나는 모험이 된다. 일부러 ‘이렇게 해야지!’라고 독한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데 신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하루가 정말 짧았다(물론 우리가 유럽에 머물던 시기에는 밤 9시까지 날이 밝았던 탓도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처럼 연장되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물론 건강관리는 잘 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잊지 말 것. 함께 움직이는 동료에게 폐가 될까 두려워 자기 관리하며 버틴 1인의 고백임). 어쨌든 공식일정도 좋지만 공식일정 이외의 시간에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것이 결국 우리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감을 잃지 말라는 것. 이번 탐방은 기억발전소의 아이템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여러 기관을 방문하고 관계자를 만나는 것이 목표였다. 아카이브에 관해서는 이미 선구적인 영국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독일에서도 ‘기록문화’와 ‘개인사 아카이빙’에 대한 관심은 그 문화적 토양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서 때로는 부러워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렇게 될 수 없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탐방을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선진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라고 해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또 기억발전소에서 그동안 해왔던 방식이나 접근방향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상대적인 비교로 속상해하거나 무작정 그들의 경험을 배워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되 우리의 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까? 일단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얻는 여정이 되었다는 점이 이번 탐방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 탐방이 나라는 개인에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 솔직히 선물이라기보다는 앞으로의 숙제를 얻은 것 같다. 여행(=탐방)을 하는 내내 새로운 배움의 순간이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적이 여러 번이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번 탐방 기간 동안 내가 얻은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생각이다. 나 자신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 무엇보다 이 일을 시작한 나라는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배경이나 자원이 완전히 다른 가운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푸른 눈의 이방인들이 드러내는 그 일에 대한 애착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다시금 깊이 던져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의 모든 과정에 함께 하는 동료와 후배들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울타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기억발전소의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그 보폭을 뗄수록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더 많이 나누고 고민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쨌든 결론은 ‘사람’으로 모아진다. 아카이빙의 종주국답게 문화․역사적으로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 뿌리 찾기 등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녹아있는 영국의 여러 국공립민간기관 그리고 세계적인 사회적기업가로 시니어의 이슈를 전시로 풀어내며 자연스럽게 삶의 이야기를 건드리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등을 만나고 돌아오니 질문 하나가 남았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과연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그리고 이번 여행을 마치며 내린 결론은 “기록을 위한 아카이빙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아카이빙”이라는 것이다.
돌아온 후 서울에서도 마치 영국과 독일에서처럼 일상을 탐방하듯 즐거움과 놀라움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회적기업’이나 ‘비즈니스’라는 말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매일매일 꾸준히 이 일상을 살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란 내가 익숙한 곳에서 떠나는 일이지만 사실 여행(Journey)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질 때까지의 하루’를 의미하는 불어 ‘jour’에 닿아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긴 여행도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일주하는 일정이자, 매일매일 쓰는 일기(Journal)인 셈이니까. 잠시 한숨 돌렸으니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씨커즈. 고맙습니다. 땡큐! 아이러브유! ^^

 

 

 

 

팀원 이원영

 

  보름 간 영국의 런던과 브라이튼, 독일의 베를린과 함부르크 등 다양한 지역과 기관을 방문하며, 여행만으로는 보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왔다. 영국의 여러 아카이브와 박물관 등의 기관을 방문하고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기록’되어지는 것의 중요성, 기록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했다면, 독일의 다이얼로그 소셜 엔터프라이즈의 전시,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 그리고 유대인박물관에서의 전시는 기록이 보여지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사람들에게 ‘아카이브’는 박물관, 도서관과 같이 친근한 곳으로, 자신의 가족의 역사와 같은 찾고자 하는 주제에 관한 자료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에게 있어 ‘원문’이라 하면 중요하고, 반드시 훼손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을 뿐, 원문을 다양한 사람들이 읽고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영국에 원문이든 복사본이든 다양한 기록을 보고자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자신의 가족사를 찾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르나 많은 기록들이 쌓여있으며, 누구나 쉽게 아카이브된 기록에 접근하도록 소장된 자료의 온라인 검색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상주해있는 아키비스트들이 도움을 주고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자료 활용법을 알려주는 계기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기록을 친근하게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국의 아카이브 기관들은 기관끼리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기관이 함께 일을 하는 방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서로의 정보가 공유된다는 것, 각 아카이브가 어떤 주제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갖추어 아카이브 기관마다 제공하는 자료가 무엇이고, 특징이 어떠한 지를 기록을 찾는 이들에게 알려주어 더 많은 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였다.
  독일에서는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 전시,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를 체험하고, 담당자를 인터뷰하였다. 한국에서 자료를 보던 것과 실제로 어떻게 전시가 진행되고 운영되는지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시간과의 대화와 침묵 속의 대화를 통해서는 ‘만남’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유대인 박물관의 전시는 ‘예술’이 줄 수 있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만남이라는 말은 지극히 상투적일지도 모른다. 기억발전소는 책과 전시를 통해 대상자(시니어, 청소년 미혼모)와 일반인들이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다보면 인식 개선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게 되는데, 책과 전시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진지한 장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유대인 박물관에서 만난 직선과 사선, 경사가 주는 공백의 의미, 다양한 전시 형태를 살펴보며 여러 기록들이 주는 직접적인 이해와 만남 이외에 다르게 다가오는 감동이 있었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기록들을 아울러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유대인 박물관은 뚜렷하게 하나의 인상으로 기억되게끔 만들었다.
  탐방이 의미가 있었던 건 기억발전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는 동시에 나를 계속해서 자극하고,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더 채워 나가야할 것은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기억을 마주하는 의미에 대해, 또 개인의 기억이 다른 이들에게 보여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런 면에서 부족한 영어실력, 사진, 회화, 건축 등에서 보여지는 예술을 보는 부족한 안목이 계속 아쉬웠다. 이를 채우기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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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마지막 날, 기억발전소는 유대인 박물관으로 향했다. ‘개인’의 삶과 기억들이 공적 기억이 되는 사례 기관으로서 유대인 박물관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커다란 인종적 차별이라는 아픔을 견디고 만들어진 기념관 겸 박물관이다. 다른 생활양식의 차이, 역사, 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재의 여러 이민이나 사회적 다양성이나 정체성에 관한 주제로 연결지어 꾸준히 특별전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소수자 아카이브의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933년 설립된 유대인 박물관은 이후 나치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2차 대전을 겪고 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01년 9월 11일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유대인계 미국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건축설계로 지어진 유대인 박물관 건물은 과거 프로이센의 법원으로 사용되던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확장한 것으로, 새로 지어진 건물은 유대인을 나타내는 다윗의 별이 왜곡된 형태를 띄고 있다. 박물관의 외벽뿐 아니라 전시장 내부의 건축은 ‘직선’과 직선이 만나는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공동, 공허감, 공백을 뜻하는 단어 보이드(Void)를 표현하기 위해 건축가가 의도한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중세시대부터의 유대인의 역사에 관한 상설전시와 홀로코스트 타워를 비롯한 유대인이 겪은 학살이나 차별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전시가 행해진다.

 

건축가가 말하는 건축 의도와 닿아있는 메인 콘셉트는 “VOID” 즉 공동, 공허감이라는 단어이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유대인 학살과 함께 유대인과 관련된 많은 기록물이나 자료도 함께 사라졌다 이 비어있는 틈이 바로 유대의 역사에서 사라진 기억, 사라진 기록을 의미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유대인의 역사와 건축이라는 예술이 주는 울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였다.
전시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연속성의 축(Axis of Exile)’이라 부르는 첫 전시장을 만나게 된다. 경사진 바닥을 걸으며 당시 유대인이 사용하였던 물품, 주고받았던 편지, 가족사진 등을 보게 된다. 또한 24m 높이의 홀로코스트 타워를 비롯하여, 야트막한 경사 위에 세워진 콘크리트 기둥이 있는 ‘추방의 정원’이 있다.

 

연속성의 축

 

 

추방의 정원

 

다음 전시장은 메모리 보이드(Memory Void)로 쇠로 만들어진 얼굴 형상의 오브제 1만 여개가 바닥에 깔려있는 샬레헤트(Shalekhet, 낙엽) 위를 지나다니며 철이 부딪히는 소리를 느끼게끔 하는 전시와 빈 공백이 있다.

 

 

이후 유대인의 2천년 역사와 유대인과 독일의 관계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의 풍습에 관한 비디오, 여러 지역의 디아스포라의 모습, 유대인 과학자들의 성과, 일상적인 유대인 학생들의 공간이나 가정의 공간 재현 전시, 구술을 들을 수 있는 공간 등 다양한 전시 방식이 활용되어 긴 세월 동안의 유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전시 공간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유대인의 문화와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둥그런 소파 형태의 시청각 섹션, 참여와 체험을 유도하는 디스플레이, 아티스트의 작업을 통한 관객 참여, 기억을 바로 수집/녹음할 수 있도록 만든 테이블, 주제별로 구술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오디오 섹션 등)와 예술과 기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근방식이 있었다. ‘한 개인의 경험’을 제공해주고 그것들을 기억함으로서 나의 ‘감정적인 체험’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세심한 프로세스가 인상적이었다.

 

 

 

 

 

‘복종(Gehorsam; Obedience)’이란 제목의 특별전은 신을 따르고, 자신의 아들을 신을 위해 희생시키고자 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시작점 삼아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와 멀티미디어 작가 사스키아 보데케(Saskia Boddeke)는 영상과 음악, 오브제 설치 등의 기법을 활용하여 15개의 방을 구성하여 아이작에게 신과 명령과 아버지의 대한 사랑 사이의 무엇이 더 강한가? 그리고 복종과 믿음에 관한 현대적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 전시가 진행중이었다.

 

 

 

 


유대인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온 뒤, 모두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유대인 박물관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파장이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가장 잘 보여준 탐방지가 아닐까 싶다. 입장과 동시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극적인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상징적 장치들로 관람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축 설계가 인상적이며, 다양한 시도와 예술과 기록의 경계를 넘나드는 접근방식그 안을 채우던 희생자들의 일기, 편지, 앨범과 같은 평범한 삶의 풍경이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을 더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박물관의 상설전과 별개로 특별전과 연계하여 현재진행형의 기록이 진행되고 있고, 그것이 다시 작품으로 적용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핍박과 억압 속에 되살아난 유대의 역사를 한 축으로 보여주되 특별전에서는 동시대의 ‘이슈’를 강조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눈깜짝할새 2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유대인 박물관을 끝으로 베를린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29일 이른 새벽, 런던 히드로를 경유하여 인천을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테겔 공항으로 향하는 길, 밖에선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적막 속에서 2주 간의 탐방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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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튼

 

기억발전소가 탐방지로 영국을 선택하였던 가장 큰 이유는 매스 옵저베이션 아카이브 & 더 킵(The Mass Observation Archive & The Keep)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매스 옵저베이션 아카이브(이하 MOA)는 영국인의 일상에 주목하여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워크숍, 자원봉사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이렇게 얻어진 자료를 연구자가 아닌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된 아카이브의 가장 대표적 사례인 동시에 오래된 사례다. 기억발전소 역시 ‘일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선행 기관으로서 MOA의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기억발전소는 23일, 24일 양일간 MOA와 더 킵(이하 The Keep)을 방문하여 아카이브 체험, 기관 투어, 인터뷰, 워크숍 참여 등을 진행하였다.

 

 

MOA는 1937년, “스스로의 인류학(An anthropology of ourselves)”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거리와 일터, 종교행사, 여가 활동 등에서 일어난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들을 기록한 사회 연구 프로젝트 그룹에서 시작하였다. MOA와 서섹스 대학의 연계가 시작되면서 MOA가 수집한 컬렉션들을 The Keep으로 이관하였다. 

 

MOA에서 수집한 일기

 

The Keep은 East Sussex Record, the Royal Pavilion & Museums Local History, MOA, Sussex Family History Group 등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영국, 서섹스(Sussex) 지방과 그 사람들, 서섹스 대학 등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다. 2013년 여름 준공된 아카이브 건물은 최적의 상태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한 여러 설비, 단체의 사무실, 워크숍룸, 열람실이 있다. MOA는 The Keep과 함께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자원봉사 프로그램과 함께 학교, 지역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소장 자료의 활용방법에 대해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그리고 MOA는 생산되고 활용된 결과물은 리포트나 책의 형태로 출간하거나 온라인으로 다수에게 공개한다. 
 

 

  MOA와 The Keep의 담당자인 수잔 로즈(Suzanne Rose), 엠마 존슨(Emma Johnson)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와 당대의 기록을 수집해나가는 기관의 여러 노력들, 특히 교육 워크숍 분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교육과 관련해서 시니어, 학생, 장애인 등 다양한 대상을 상대로 진행하며, 아카이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행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기록을 아카이브한다는 것이 단순히 ‘오래된 것’을 정리하고 기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했다. 
  

 

또한 MOA는 작년에는 브라이튼 포토 비엔날레에 초, 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워크숍을 진행한 결과물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에게 왜 기록이 중요한지를 각성시키는 작업을 거부감 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MOA와 The Keep에서는 그러한 차원에서 지역주민을 비롯해 청소년 대상의 아카이브 강연과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록문화에 대한 인식이 넓어지고, 그 관심의 폭이 깊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Keep의 공간들은 세미나 룸으로부터 시작해 레퍼런스 룸, 리딩 룸, 1층 자료보관소, 격리실, 2층 자료보관소, 아키비스트 작업실, 포장실, 디지털 룸으로 이루어져있다. 기관 투어를 통해 세미나룸과 자료보관소를 제외하곤 실제로 아키비스트가 일을 하고 있는 공간에서 아키비스트로부터 직접 본인의 업무나 진행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소개받을 수 있었다. 다음은 투어 장소마다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세미나 룸(Seminar Room)

총 3개의 교육실이 있으며, 총 16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원본 자료들을 사용하여 교육을 한다.

 

2. 레퍼런스 룸(Reference Room)

 

이곳은 리서치에 필요한 자료들을 검색하기 위한 곳이다. 다양한 뉴스 자료들이 있으며, 특정 기사를 찾고자 할 때 날짜별로 뉴스를 검색하면 된다. 현재 The Keep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은 온라인상에서 검색하는 것도 가능하다. 족보(Ancestry)를 검색하려면 인터넷상에서는 돈을 내야 하지만 이곳에 직접 오면 무료로 검색할 수 있다. 색인(Index)을 사용하여 자료를 검색할 수도 있으며, 자료들은 지역별로도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별로 관련 자료를 검색할 수도 있다. 역사기록소에는 역사관련자료가 있다. 모든 자료들에는 바코드가 있고, 바코드 별로 지정된 자료에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면 해당 자료의 원본이 이곳의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3. 리딩 룸(Reading Room)

 

리딩 룸에서는 원본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먼저 데스크로 가서 본인의 카드를 스캔한 뒤, 필요한 자료를 말하면 직원이 보관소로 가서 필요한 자료를 가져온다. 최대 한번에 3개의 자료를 주문하여 볼 수 있다. 스캔을 하고자 하면 하루에 10파운드를 지불하면 무한대로 자료를 스캔하거나 사진을 찍어갈 수 있다. 이곳 한 켠에는 대형 지도도 보관되어 있는데, 각 선반마다 지도가 개별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책 형태로 된 자료들은 자칫하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받치거나 책 페이지를 고정시킬 쿠션을 준비해둔다.

 

4. 1층 자료 보관소

 

수백 개의 지도와 포스터 등 중요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며, 각 층마다 하나씩, 총 3개의 자료보관소가 있다. 이 자료들을 모두 일렬로 나열하면 6마일이 된다. 이곳의 기온은 자료를 보관하기 가장 적절한 기온인 약 섭씨 12도이다. 공기가 주기적으로 펌프에 의해 순환된다. 자료들이 손상되지 않도록 설계가 되어있는데 예를 들어 화재가 발생한다면 천장에 있는 시스템이 가동하여 공기를 빼 진공상태에서 불이 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문은 2개이며, 이 중 하나는 리딩 룸(Reading Room)과 바로 연결되어 자료들을 속히 꺼내 전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5. 격리실(Quarantine Room)

 

이곳으로 이관된 자료들의 경우 이전의 보관이 잘못되어 곰팡이가 피거나 균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자료를 열람하는 사람에게도 균이 전염되어서 기침증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격리실에서는 자료에 있는 균들을 멸균한다. 우선 자료를 진공 팩에 넣고 특수냉동고에 넣는데, 영하 35도 이하로 약 1주일간 보관하여 균들을 죽인다. 그 후 건조대에서 자료를 건조시킨 후 아키비스트(archivist)들에게 전달한다.

 

6. 2층 자료 보관소

 

2층의 자료 보관소는 1층에 비해 기온이 낮기 때문에 자료를 보기 위해서 녹이는 데에 시간이 길어져 자료를 받기까지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기온은 8도 정도이며, 이곳에 보관되는 자료는 사진, 필름 등이다. 우리가 이곳에 보관중인 가장 오래된 사진자료는 1850년대의 것들이다. 근대 사진자료들, 대학교들의 사진자료들, 뉴스 사진자료들 등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이 있다.

 

7. 아카비스트 작업실

 

자료들은 멸균을 거친 후 아키비스들에게 무작위 순서로 전달되며, 자료를 받은 아키비스트들은 자료를 살펴본 후 분류한다. 이후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 당시 아키비스트가 작업하고 있던 문서자료는 양피지(동물 가죽)의 기록이었다.

 

8. 포장실

 

자료가 보관되기 전 각 자료의 특성에 맞게 아카이브 상자를 만들어 자료를 담는다. 당시 아키비스트들은 오래된 카메라와 한 여성의 폴란드 여행사진집을 포장하고 있었다.

 

9. 디지털 룸

 

디지털 룸에서는 자료를 스캔, 복사해준다. 일반적인 자료들은 대형스캐너로 스캔이 가능하지만, 매우 큰 초대형 자료들은 초대형 스캐너로 스캔한다. 스캐너 위에 달린 사진기로 자료를 위에서 사진 찍는 방식이다. 원본자료를 사람들이 열람하면 손을 타기 때문에 자료 손상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디지털화된 자료를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날 진행된 집의 역사에 관한 워크숍(History of House Workshop)의 내용은 아카이브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 가운데 ‘건물’에 관련된 내용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약 한 시간 정도의 짧은 워크숍이었다. 대부분 워크숍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KEEP을 처음 방문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크숍에 참여한 많은 시니어들이 주제에 관해 특별한 관심이 있어 필기도 열심히 하고, 질문도 하고. 전반적으로 자기가 살던 집뿐만 아니라, 가게에 대한 관심도 있어서 그들이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기록물을 찾아보려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열명 남짓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왜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왜 과거의 역사를 찾고자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한 참가자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매우 궁금해서”, 또 다른 참가자는 “1897년에 절벽 부근에 지어진 집의 배경이 매우 궁금하여” 워크숍에 참가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다른 기관에 비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날, 밤늦게까지 기관의 다양한 자료를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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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으로 이어지는 항만으로 강의 역사와 함께 하는 이곳은 이미 수 세기 전에 항만으로 계획 개발된 곳으로 지금은 JP모건이나 시티은행 등 다국적 기업의 빌딩으로 들어서있다. 한때 영국의 노동운동과 좌익운동의 중심지였던 카나리와프가 세계 자본의 상징으로 변모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런던 외곽 개발과정에서 지역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만큼 이번 도크랜즈 박물관 탐방은 카나리와프의 옛 모습과 관련된 기억과 기록물을 어떻게 수집하고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3년 영국 정부는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수 있는 도크랜드의 과거와 역사, 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옛 설탕창고를 리모델링하여 도크랜즈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AD43년부터 현재까지 런던 항구 지역의 역사를 담은 각종 사진과 자료 등이 연대기별로 전시되어 있다.

 

 

도크랜즈 박물관에는 항만에서 사용한 물품이나 노예무역에 관한 기록, 편지뿐만 아니라, 항만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공간이 있었다. 항만 주변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자료, 이주해온 흑인의 후예들의 삶에 관한 구술기록 등 다양한 기록을 활용하여 노예와 여성의 삶 등을 배울 수 도록 전시가 잘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장 일부가 일정 시간이 되면 조명이 꺼지고 영상이 재생되면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었고, 보여지는 영상 역시 아트 디렉팅이 된 2차 가공물 등의 세트 구성이 흥미로웠다.

 

 

도클랜즈 박물관 내부에는 세인스버리 스터디 센터(Sainsbury Study Centre)가 있다. 이는 1869년 설립된 슈퍼마켓 체인인 세인스버리에 관련된 기록, 자료 진열이나 유니폼 등과 같은 소품을 포함하여, 사진이나 음성 등을 보관하고 있는 세인스버리 아카이브(Sainsbury Archive)의 전시장과 연구를 위해 방문 가능한 스터디 센터이다. 런던 도크랜즈 박물관에서도 다양한 아카이브와의 연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런던 박물관에서 소유하고 있는 고고학 아카이브와 다양한 템즈강에 관한 기록, 전쟁시기의 도크랜드, 발전사 등의 자료를 활용하여 전시를 구성하고 있었다. 

 

 

활용기록물과 예술작품의 연계지점이 매끄러웠고, 관람객의 호흡을 조절을 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중간 중간 시민대상으로 진행했던 워크숍 결과물들을 함께 구성해놓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기억들이 같이 호흡하는 느낌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역사, 사료로 풀어내는 아카이브 전시구성을 지루하지 않게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했다는게 좋았고, 시민의 기억을 활용하는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도크랜즈 뮤지엄 방문을 끝으로 일주일 간 런던에서의 탐방을 끝냈다. 다음 날 매스 옵저베이션과 더 킵이 있는 브라이튼 지역으로 가기 위해 저녁 시간에는 짐을 정리하였다. 절반의 탐방기간 쌓인 많은 기관별 소개자료, 리플렛, 책, 참고용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기관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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