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일자

2011 8 17~181 - 4

방문기관의 성격(주요사업)

지속적인 사회혁신고무

아이디어 오피스제공

창업 인큐베이팅

네트워크 연결

방문목적

- 문화예술분야외 사회적인 창의적인 인큐베이팅의 모델 찾기

-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한 네트워크의 방안 프로그램 개발

방문기관 담당자

Marike Pluk

홈페이지

www.amsterdam.the-hub.net

주소 연락처

Westerstraat 187 1015MA Amsterdam The Netherlands

+31(0)20 427 4283

기관 설립배경 목적

사람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데 공간적, 내용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며 사회혁신을 모토로 세계적인 네트워크 형성, 상상력과 창의적인 계획으로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현황

-11여명의 상근자

-회원제, 200여명 (회비에 따른 차등지원)

-60여평의 오피스

-회의실, 다목적실, 주방, 아카이브 등의 공간으로 나뉨

-운영시간 오전 9~오후 6 (, )

-회원공간은 개별 대여



대부분이 유럽이 그러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날씨는 시시때때로 변한다.
햇빛이라곤 찾아볼 수없을정도로 하늘이 구름이 가득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반짝한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 허브를 만나러 가는 날도 어김없이 변화무쌍한 날씨가 펼쳐졌다.
숙소에서 짐을 챙기고 나올 때에는 파란하늘이 청명했다. 트램을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가방에서 방수 잠바를 입었지만 빗방울이 매우 커서 머리가 아플지경이었다.
미리 사전 조사한 경로대로 HUB를 찾아갔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리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허브 입구 - 허브가 위치한 건물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들에 간판이 없다.



거의 다왔는데...
아무리 지도를 봐도 잘 찾아왔는데 HUB간판 같은 것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HUB가 있을 것같지 않은 주택가였기 때문에 우리는 몇 분째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몇 바퀴를 비를 맞으며 뺑뺑 돌다가 주소지와 일치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의 우체통 - 허브를 비롯한 많은 기관들이 한 건물을 쓰고 있었다.



내부는 밖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아늑하고 고급스러웠다. 한컷 비를 맞은 우리의 몸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건물 내부의 카펫을 적시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우체통을 잘 살펴보니 익숙한 텍스트가 보였다.

'HUB'

이 텍스트가 어찌나 반가운지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건물 로비는 우체통과 각 기관들과 연결된 벨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내부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HUB라고 쓰여진 벨을 누르자 발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사전에 미팅약속을 했던 한국사람들이다'
라고 말하자 HUB의 marieke가 로비로 내려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HUB의 내부 풍경-전체적으로 오픈형 공간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들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marieke는 사전에 우리와 미팅약속을 했던 허브의 총괄 매니저다. marieke는 낮선 암스테르담에서 HUB를 잘 찾아왔다며 매우 친절하게 맞이해주었다. marieke의 손에는 대략 5개의 전화기가 들려있었는데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를 능숙하게 받는 모습이 HUB가 얼마나 바쁜 곳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5개정도의 화일을 주었다. 그 화일에는 HUB의 다양한 정보가 매우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 계획 파일이었다.
공간 도면, 가구의 종류, 가구의 사이즈, 배치, 컬러, 공간 활용방안등이 매우 상세하게 나와있었고 그러한 세심함은 HUB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창의적인 사업모델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기초가 되었다.
marieke는 바쁜 와중에도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인터뷰를 해주었다. 우리가 준비한 기념품을 보자 매우 좋아하는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매우 기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역시 고맙고 기뻤다.

HUB의 회원들-회원의 얼굴, 취미, 전공, 직업등의 내용이 적혀있고 원한다면 언제든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역시나 HUB안에는 오늘도 많은 회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놀란 것은 등에 기타를 메고온 어린 소녀에서부터 머리에 희끗희끗한 어른까지 모두 이곳에서 자유롭게 소통을 하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각자 일을 하면서도 편안한 쇼파에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했다.

회의실에는 지난 회의의 흔적이 보이는 화이트 보드가 있었다.

뭔가를 열심히 논의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한편 marieke는 주변 기관들과의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Marieke와의 인터뷰 전문은 글 말미에 있다)

아무리 훌륭한 단체라해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했다. 한 건물안에 있는 단체들과 소통하고 함께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상의도 여러번 했었다고 했다.


HUB를 설명해주는 marieke - 바쁜 와중에도 우리를 위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술을 하는 우리가 보아도 HUB의 공간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공간과 편안한 의자가 있어야 한다는 marieke의 말은 상당히 공감되었다. 우리가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인 HUB를 방문한 이유를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였다. 많은 문화예술가들은 객관적으로 누가 보아도 설득력있는 사업 구조와 시스템들을  갖고 있질 못하다. 그러한 이유로 그룹을 만들거나 창업을 했다가도 재정적 위기 또는 운영적 어려움으로 금새 해체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훌륭한 예술활동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 기관의 경영, 운영이라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발상들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HUB는 문화예술기관은 아니지만 그 운영방식이 매우 창의적이었고 이러한 모델은 문화예술기관이 지속가능한 운영체계를 가지려면 어떠한 것이 필요한지를 역으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우리의 방문으로  너무나도 바빠보이는 marieke를 난처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우리는 공간을 좀 더 둘러보다가 다음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HUB와 협력하며 같은 건물을 쓰는 mooi- 예술가들이 디자인한 다양한 가구들이 있다.

우리는 둘째 날  marieke의 조언대로 HUB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며 인테리어에 매우 많은 도움을 준 mooi와 갤러리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mooi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워낙 세계적을 유명한 예술가, 디자이너들의 아트상품을 유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mooi가 HUB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그 곳에는 인터넷이나 책으로만 봤던 유명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작품을들 바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왔다.
물론 가격도 놀라웠다. 하나같이 매우 고가의 상품들이었으나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 곳의 풍토도 이러한 놀라운 작품들을 생산하게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다음은 Marieke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The Hub Amsterdam]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The Hub Amsterdam]은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이다. 영국을 시작으로 뉴욕, 프라하, 밀라도, 비엔나, 상파울로등 많은 세계도시에 우리가 있다. 우리는 세상에 다루기 힘든 문제들을 해결하기위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다. 집에서 혼자 작업하거나 카페에서 틈틈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함께 모여 혁신적이고 실현가능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The Hub Amsterdam]은 2008년 11월부터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 이곳에서 지역적 네크워크를 형성해왔었고 그 결과 우리가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 [The Hub Amsterdam]에서 Marike Pluk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떻에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나?
나는 행운아다. 우연히 주변에 사회적 기업가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사귀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활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허브의 전반적인 관리자이다. 이 공간을 사용하고 예약, 회원서비스등을 돕고 있다. 나는 2010년부터 일을 했으며 사람들과 끊임없는 대화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 [The Hub Amsterdam]의 이용방법은 어떠한가?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회원제로 운영되며 회비는 다음과 같다. 
     Start-up Up&Running
Hub connection 23 €         30€
Hub 25         93€         120€
Hub 50         145€         195€
Hub 100         235€         335€
Hub Unlimited 300€         400€
위의 금액은 한 달 기준이며 부가세는 별도이다. 자신의 재정 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 [The Hub Amsterdam]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어떠한 것이 있나?
요일마다, 시즌마다 다르다.
 Sexy Salad라는 프로그램은 목요일마다 진행되는데 각자 건강하고 새로운 재료를 준비해서 함께 맛있는 점심을 해먹는 프로그램이다. 그 외에 마시지 코스도 있고 피트니스, 요가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한편 Speaking Circle이라는 프로그램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법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20초안에 아이디어를 짜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참고로 프로그램 별로 별도의 추가 요금을 받는 것도 있다.

▪ [The Hub Amsterdam]의 자랑은 무엇인가?
훌륭한 인테리어(웃음)와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사업에 대한 정보를 지원해 줄 뿐만 아니라 법적문제, 재정정책, 기업의 형태, 계약, 지적재산권, 기획, 인적자원, 회계, 감사, 미디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에 대해 지원해준다. 허브 회원들을 대상으로 30분에 한하여 무류상담을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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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4일째. 아기다리고기다리 이벤트 날. 시코쿠 요가관련 행사가 있어 거기서 음식들을 판매하는 날이다. 위치는 좋았다. 승강기 앞. 현미샐러드. 타피오카 쥬스. 감자 쥬스. 콩 샐러드. 샌드위치.

 


이걸 언제 다 파나 싶었는데 츄러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이 다 팔렸다. 건강을 중시하는 요가인들이라 마크로비오틱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판매하려는 것을 잘 파악해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라. 탁월한 선택이었다. 학교로 돌아오니 9시가 다됐다. 

리더, 도서관사서였다는 미와씨, 초 귀여운 히카루군 엄마 유카씨, 유쾌 발랄한 소요마마 카요씨, 곧 선생님이 될 토시코씨. 오늘 고생 많았어요.




8/1
5일째. 모든 여자분들이 휴가를 받았다. 우리는 어디를 갈까하다가 처음에 여기 오기위해 들렀던 스에역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걸어 다니면서 모르는 길도 걸어보고 새로운 장소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 JA후레아이 직판장을 발견해서 싼 야채 과일에 환호하고선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더웠다. 뭐 그런 거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데 소요짱과 같이 외출했다 돌아오는 카요씨를 만났다. 카요씨는 소요의 엄마로 소요를 먼저 여기 학교에 보냈었다가, 최근에 학교에 들어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같이 생활하는 부모는 히카루군의 엄마 유카씨, 소요짱의 엄마 카요씨 이렇게 둘이다. 평소 때는 우리랑 같이 부엌일이나 청소 같은 일을 도와준다. 우리가 많이 헤맬 때 힌트를 주거나 슬쩍 와서 도와줬다. 힘들어하다가도 눈 마주치면 싱끗 웃어주고, 농담도 해주고, 우리는 그걸로 힘을 내서 다시 일을 하기도 했다. 정말 사소한 게 큰 힘이 되는 때가 있다. 

학교서 맨날 보다 밖에서 보니 더 반갑다. 일을 구하러 시내에 갔다 왔단다. 일을 구하게 되면 이쪽으로 옮겨오게 될 거란다. 고향을 떠나서 살 게 되는 게 어떤 건지 실감나지 않아 잠깐 상상을 했다. 버스는 섰고, 우리는 학교로 돌아왔다.

저녁때 호스트아주머니가 오꼬노미야키 재료를 준비해 두고 외출해서, 어제 자원봉사자로 온 쿠로씨랑 아이들이랑 같이 저녁을 만들었다. 이건 오코노미야키가 아니라 지지미라는 둥[지지미를 아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지지미는 한국음식이라는 둥,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라는 둥, 넌 피자를 제일 좋아하잖아, 피자는 두 번째야 라는 둥 부엌에만 박혀있어서 식사 때만 봤던 아이들은 처음에 봤을 때 수줍어하던 건 어디 갔는지 우리 주위를 맴맴 돌면서 한두 마디씩 툭툭 던지면서 우리를 웃게 했다. 오코노미야키는 내가 전에 실패했던 지지미 맛이 났다. 음식은 맛과 모양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날 저녁은 만들 때가 너무 재미있어서 잊지 못할 거다.

저녁에 두 가족이 더들어와 어른은 2명, 아이들은 4명이 늘어났다.



8/2
6일째. 아이들이 들떠있다. 왜? 이온가는 날이란다. 이온? 그게 뭔데, 영화보고 해. 백화점이야? 백화점은 아냐. 뭐지? 우리도 가나? 우리도 가요? 간단다. 준비할게요.

하고 내려오니 어제저녁에 들어온 아이는 분명 아닌데..처음 보는 아이가 있다.  서로 자기소개도 없이 대화는 시작됐다.


어디가? 

우리? 이온에 가[이때도 이온이 뭔지 모르고 있었다]

좋겠다. 

너도 준비해 다들 가.

안 돼 못가.

왜?

돈이 없어. 못가.

괜찮아 그냥 가도 돼.

안 돼, 돈이 없다니까.


우리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왔다 갔다 하던 어른들이 괜찮아 엄마[여기 호스트를 이렇게 부른다]가 아이들한테 용돈 나눠 줄 거야. 됐지 들었지? 이제 가서 준비해. 시무룩해있던 아이는 어느새 쌩 달려간다. 이날 오전에 들어온 미키짱. 어느새 모자까지 쓰고 이렇게 빙긋 웃고 있다.

 


 

이온은  대형할인마트였다. 3개 반으로 나눠져 돌아다녔는데 카요씨, 오코노미야집 아들 카짱, 코즈마 형, 유토, 어제 들어 온 코스케 우리가 한 조였다. 서점-오락실-100엔샵-과자코너로 1시간 40분이 꽉 채워졌다. 오락은 정말 참기 힘든 유혹인가보다. 딱 한판만 하자를 어기고, 카짱! 어느새 동전을 넣고 있다. 아아, 이럼 곤란하다 싶었는데 그 한판을 마지막으로 툭 털고 일어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 반은 시간을 잘 지켜서 도착했다. 다른 반이 올 때를 기다리면서 공동체생활에 충실한 과자타임을 가졌다. 




 

8/3
아침 일찍 학교를 나왔다. 우리가 학교에 있던 일주일 동안 2명의 자원봉사자와 2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배웅을 했다. 만나고 헤어지는 건 세상의 이치라고 한다만은 어렵다. 그네들한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우리가 어려웠다. 6시에 포장, 스티커를 붙이는 일 때문에 일어난 카요씨, 쿠로씨, 주인아주머니에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아침으로 먹으라면서 어제 주문이 들어와서 만드는 거라던 바나나 파운드케잌을 꺼내 우리에게 주셨다. 그동안 서운한건 서운한 거고,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받아 들고 옆을 보니 리더랑 카요씨는 서로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서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려고 아침시간을 노린 거였는데 어느새 나도 훌쩍인다. 정말 안녕, 고마웠습니다. 한참을 가는데 유카씨가 우리를 불렀다.


늦진 않은거죠? 잘가요. 이거


하면서 편지를 건내 준다. 그러곤 다시 학교 쪽으로 뛰어 가셨다. 리더도 나도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유카씨가 뛰어가 걸 봤다. 감성에 젖어 있긴 했어도 이동은 해야 했다. 아이가와쵸에서 다카마츠 시내로 나와 다카마츠역에서 호스트분이 줬던 바나나파운드케익을 꺼내 말그대로 우걱우걱 먹었다. 금방 버스가 와서 버스에 탔고,  5시간정도 걸려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우리가 있던 가가와현의 아이가와초는 그야말로 촌이었다. 버스도 자주 없다고 궁시렁 거렸는데 히로시마에서 콘크리트건물들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그 녹색 숲이 벌써 그립다고 우리는 촌이 맞나보다고 킥킥댔다.


숙소에서 메일을 확인하니 같은 방을 썼던 쿠로씨한테서 메일이 와있다. 이것저것 고맙고, 히데가 일주일동안 있어줘서 고마워요 라고 전해주라고 했단다. 히데는 고학년반에 있던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있어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학생. 우리한테 고마워해줘서 우리가 고맙다. 


 


여기는 히로시마. 내일부터 다시 우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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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따비치에서 남부 쪽은 고급 호텔, 워터파크, 대형 쇼핑몰, 대형 식당들이 즐비하다.
때문에 이번에는 그 쪽을 탐방해보려고 한다.

 

우선 아침에 일어났는데 바다왔으면 아침바다라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새벽에 바다를 찾았다.

 

(새벽 꾸따해변 풍경. 금새 밝아졌다.)

아침을 먹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남쪽으로 가면서 느끼는 점은 여태 잘 보지 못했던 동양인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꾸따는 여행자들이 찾는 골목(중부)와 고급 호텔, 대형식당이 많은 남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묶고 있는 중부쪽에서는 정말 보이지 않았는데 남쪽으로 갈 수록 많이 보였다. 심지어 한국인들도 여럿 보았다.
반갑기는 했는데 알 수 없는 위화감? 같은 것이 들었다.
특히 쇼핑센터에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비율이 반반정도였다. 이 많은 사람들을 내가 왜 거리에서는 잘 보지 못했을까.
문화적인 배경, 여행에 관한 입장차이 같은 것이 있겠지만 다양한 것을 못보고 그냥 여행사에서 차려주는 그대로, 또 남들이 좋다고 가니까 나도 따라서, 이러한 태도는 조금 아쉽다. 물론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여행에 관한 사고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디스커버리 쇼핑몰 뒷 길. 바다가 바로 마주보고 있다.)

발리에서 가장 크다는 디스커버리 쇼핑몰에 드디어 도착했다. 내부는 약간 코엑스같은 느낌이 난다. 또 굉장이 넓어서 나도 다 구경하지는 못했다.
건물 뒷편으로는 바다가 펼쳐져있어 건물 내에 식당들이 뒷편에 테라스를 두고 운영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쇼핑몰 내부)

위에 보이는 것은 일부분이다. 지하에 의류,잡화 관련 매장이 매우 크게 펼쳐져 있고, 1층부터 4층까지는 각 층의 테마별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인도네시아에 폴로공장이 있어서 그런지 폴로 가게가 정말 안보이는 곳이 없다. 50%세일도 상시적으로 해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꼭 한벌씩 사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될 수 없었다. 만약 다시 가게된다면 꼭 산다. 두 번 산다.

(인도네시아 현지 패스트푸드 브랜드.)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브랜드를 찾았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았다. 일반 패스트푸드점처럼 햄버거, 치킨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희안한 광경을 봤다.
보통 치킨세트는 치킨+감자+콜라 이다. 하지만 이 곳은 치킨+밥+티 다. 현지사람들은 이 세트를 시킨후 치킨의 껍질을 손으로 때서 밥이랑 같이 먹는다.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후라이드 치킨을 반찬으로 먹는 광경은 좀 생소했다.

나는 현지식 세트로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블랙페퍼치킨비빔밥 세트)

발리 음식은 정말 다 맛있다. 위에 저렇게 보여도 정말 맛있다. 저 세트가 한국돈 2400원정도.

(디스커버리 쇼핑몰 정면 전경)

쇼핑몰 자체가 커서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저녁이 훌쩍 지난 시간이 됐다.
숙소에 돌아가면서 장을 봤다.
몸이 안좋아 조금 좋은 숙소로 옮겨서 냉장고가 있기 때문에, 쌓아두고 먹을 수 있다.

(맥주, 과일, 주스 등등.)

타지에서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놓고 보니 뭔가 뿌듯하고 든든했다.
과일이 싸고 맛있어서 과일을 많이 먹었다.

(피자헛 1인용 피자.)

바빴던 하루.
마무리는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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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탐방을 시작했다.

나는 대규모 관광단지로 조성된 곳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발리에서 가장 번화하고 유명한 꾸따를 택했다.
혼자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라 설렘 반, 긴장 반.

(묵었던 Pedang 방갈로 주인집 아이들. 사람이 별로 없어 수영장은 언제나 아이들 차지였다.)

(흔한 방갈로의 아침식사. 발리 방갈로 숙소들은 대부분 아침식사를 포함하고 있다. 빵과 과일, 커피가 전부지만 맛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짐을 다 챙기고, 그리고 이제 우붓 - 꾸따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간다.

여태 만났던 여러 사람들에게 꾸따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만 많고 볼거리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것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있던 우붓에 한 골목.)

버스를 타고 드디어 꾸따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곳이고 분위기가 좀 달라서 이리저리 지도만 보고 헤매고 있다.
1시간정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해매보니 대충 이곳의 지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숙소부터 잡고 짐을 풀고 가벼운 복장으로 돌아다녀야 더 알차게 구경하는데, 길도 모르고 배는 고프고.
염치없지만 맥도날드가 보여 바로 달려들어왔다.
이곳 꾸따는 우리가 흔히 아는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많다. 외국인이 많아서 그런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배달도 해준다.

(꾸따 비치 바로 옆에 있는 맥도날드. 한국과 달리 이 곳에서는 치킨류도 판매한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지 야채버거도 판매한다.)

꾸따는 여행자의 거리 뽀삐스1,2 와 다른 골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좁은 골목이 여러개 나열되어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금방 길을 알 수 있다.
내가 숙소를 알아보는 거리는 저렴한 숙소가 많은 뽀삐스1,2 이다.

정말 저렴한 것은 귀신도 없을 것처럼 폐허같은 느낌이고, 와 좋다 하는 곳은 70$이상이었다.

그렇게 1시간정도 돌아다닌 후에 그냥 아무데나 가자 하고 가격맞는 곳에 들어갔다.

(kevin's inn. 넓은 수영장이 있어 좋아 보이지만 객실내부는 정말 형편없었다. 찬물만 나오는데 불구하고 졸졸졸. 게다가 쇳물냄새 때문에 거의 씻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직원이 불친절했다. 발리에서 직원이 불친절한 적이 처음이어서 조금 당황도 했었다.)

금새 시간이 가버려 꾸따 해변과 꾸따 스퀘어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꾸따 해변.)

꾸따 해변은 서퍼들이 많고 수영하는 사람도 많지만, 무엇보다 해변 뒤쪽 그늘에서 맥주박스채로 놓고 쭉 둘러앉아 술을 마시는 서양인들이 많았다. 정말 해보고 싶었다.

(꾸따 스퀘어.)

꾸따 스퀘어는 정말 작다. 거리가 금새 끝나버린다. 하지만 그 좁은 곳에 많은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다. 가장 큰 상점은 최근에 이주했다고 하는 마타하리 백화점.
마타하리 백화점은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이라고 한다. 한국에 백화점은 규모가 주로 높이로 크지만 이곳은 주로 높이보다 넓이로 크다. 또 백화점이라고 하지만 기념품을 많이 팔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 이 백화점을 중심으로 꾸따 스퀘어는 언제나 사람이 붐빈다.

(하드락 호텔.)
이 곳 꾸따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 바로 하드락호텔이다. 해안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규모도 매우 커서 거리의 한 구석을 모두 하드락계열로 차지하고 있다.
하드락 호텔옆에는 하드락 카페, 하드락 클럽이 있고 더 걸어가면 위에 보이는 하드락 기념품점이 있다.
하드락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휴양지에 놀러온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락 컨셉의 기업이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것 같았다.

(거지여행의 하이라이트. 식사는 아무거나 때울 수 있지만 맥주는 필수.)


길고 긴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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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W 사무실 전경: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기업 치고는 너무 작고, 소박해 보이지만,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 )

SFW network executive manager: Christope Mailliet
          
 첫 인상이 웨인루니의 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도 단단해 보이는 체구와 얼굴에서 이분과 과연 잘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하고 걱정했지만, 너무나 친절하고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이번 페이지에서는 그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탐방 전에도 우리팀의 가장 큰 고민은 공간과 프로그램간의 선택의 문제였다.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사회혁신을 위해서 무엇을 중점을 둘지에 관한 고민인데, 개인적으로는 청소년들을 위한 환경 조성이 먼저라고 생각해서 공간에 대한 집착을 오랫동안 고수해왔었다.  이에 대해 그는, 우선 공간과 프로그램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이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가 더욱 중요하다. 즉 무엇을 변화 시킬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먼저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늘 들어오던 말이었다. ㅠㅠ) 그리고 이를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무엇이 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 예로 축구같은 경우 공만 있으면 공간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초기의 SFW의 활동이 그랬고, SFW란 이름 역시도 그런 것을 의미한다. 현재, 아프리카의 활동들을 봐도, 대부분이 흙바닥에서 축구화도 없이 축구를 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들에게 적합한 축구 환경을 먼저 만들기 보다는 축구가 같은 높은 접근성과 대중성을 이용하는 것이 더욱 용이하다는 것이다. 결국 축국라는 대중성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의료, 교육, 직업 등과 같은 컨텐츠를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의 장점이 잘 들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업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그것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설득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축구라는 종목은 매우 매치가 잘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학계 논문이나 미디어에서 축구의 여러 사회적 기능은 증명되었고, 밝혀졌다.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고 프로모션하는 것이 전부이다.

2.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프로그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Fun, have Fun" 당연한 대답이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멘토님들에게는 처음 들었던 말 같다. 가장 본질 적이고 가장 기초적인 것인데,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 같다. 청소년들, 특히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는 상태일 수록 그들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우리는 이것을 재미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회를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Football 3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football 3" 라는 프로그램은 앞서 설명했듯이, 경기 전 후에 상대편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는데, 이때 선수들은 각자가 원하는 경기 룰을 타협하고 정할 수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 선수들은 자신들이 경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혀줄 뿐 아니라 그 종목에 대한 흥미를 스스로 끓어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3.  네트워크 소 조직과의 관계, 그리고 스폰서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공동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SFW같은 경우 정말 운이 좋게도, 독일 월드컵 이후에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아프리카 사회와의 협력이 가능해졌고, 공동의 가치를 찾는데에도 쉬웠다.  하지만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때문에 공동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피드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아프리카는 아직 개발이 뒤쳐저있기때문에 사회 혁신의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 우리는 이 기술적인 부분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내용을 전세계에 홍보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럼 우리의 활동영역은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대되는 기회를 갖게 되는것이고, 그들 역시도 좀 더 높은 차원의 활동과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양한 영역 스폰서와 파트너쉽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SFW도 이전에는 FIFA의 지원이외는 다른 지원이 전무했지만, 현재는 14개의 업체와 파트너쉽을 가져가고 있다. 이 역시도 각 기업과 공동의 가치를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with Christope Mailli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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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해가 너무 늦게 지니  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잠든것 같은데 벌써 해가 뜬다. 
얼마 잠을 못잔것같은데....

둘째날일 오늘은 우수리스크를 탐방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간다 !

가기전에 호텔앞에 있는 혁명광장에서 앞에서 단체 사진 한장 ! 짠 



이제 본격적인 길을 찾으러 !! 고고 !


제일 처음으로 가는곳
독립운동가였던 이상설 선생님의 유허지

선생님은 내 조국의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조국의 땅을 밟을수 없고 화장하여 재를 시베리아 벌판에 날리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유언에 따라 수이푼 강변에서 화장하여 그 재를 강물에 뿌렸다.
이 유허비 앞에 있는 그강이 수이푼강이며 지금은 라즈돌노예강으로 불리우고 있다고한다.

이상설 선생님의 유언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선생님이 간절히 원했던 독립된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는 어찌 살아야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목적지는 발해성터 
발해성터라..가기전까지만 해도 그곳은 잘 감이 오지 않았다..
성각 같은것 것들이 남아 있는것일까 ?
어떤 느낌일까 ?
궁금증을 가지고 그곳으로 향했다. 




발해성터로 올라가던 그 길 많은 들꽃들이 피어 있었다 .




그래서....




 



 


머리에 꽂아보고 
어떤 분은 꽃 다발고 만들셨다 :)


 

 
들꽃이 지천인 언덕을 오르다보니 펼쳐지는 광활한 평야...상상한것처럼 어떤 성터에 대한 흔적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발해인들 
우리의 조상이 이 대륙에서 말달리고  대륙을 호령했다는 생각에 ..
그들의 기상이 가득한 이땅에 내가 와있다는 것에 ..
그리고 뭔지 모를 가슴의 뭉클함 

현재는 우리의 땅이 아니지만 

우리민족..그리고 이 광활한 대륙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땅에서 이런땅을 보고 이런땅에서 자란다면 '대륙적사고' 가 안될수 있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통일이 되는것을 생각해보았다.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이땅에 와볼수 있을테고  앞에서 이야기한 
'대륙적 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쉽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쉽다.. 
지금 이곳이 우리의 영토가 아닌 러시아의 영토라 아쉬운게 아니라
그 말로 할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발해성터에서 잠시 달려 
도착한곳은  조그만 공원

읭? 왠공원 하고 들어가 보니 




발해 거북이 ! 반갑다 녀석


 공원에 이런것이 있다니  좀 생뚱맞긴했지만... 
계속 보니 이곳과 잘어울린다..
러시아 인들도 이것을 보며 발해의 것 이라는것을 알고 있을까.
그냥 오래된 유물이고 알수도 있겠지...?





공원 바로 앞에 있는 최재형선생님의 생가.
지금은 러시아 인이 살고 있어 내부는 볼수 없지만 겉에 생가라는 표시는 있다.
이런것은 우리나라가 국가차원에서 외교적으로 잘 이야기해서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최재형선생님 생가에서 조금 걸어가니 
전로한국중앙총회를 결성한 장소가 있었다.




이 세곳 까지 다니다보니 
이곳이 러시아인지 한국인지 ...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장소인 우정마을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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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도 비가 왔는데, 러시아도 날씨가 그리 맑진 않았다.
처음 출발하기 전부터 러시아에 대해서 공부했지만, 도착한 러시아의 느낌은 낯설기만 했다. 
우리가 왜 가야하는 지, 무엇을 봐야하는 지에 대한 고민을 떠안고 도착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처음 발을 내딛은 곳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깝고 기차로도 갈 수 있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고 둘러 둘러 오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톡에 마음을 채 담그기도 전에 우리는 우수리스크로 향했다.

우수리스크에 도착해서는 짐을 풀고 주위를 약간 돌아본 후에 고려인 문화센터로 향했다. 읽을 수도 없는 낯선 러시아어만 보다, 한글을 보니 반가웠다. 이 곳은 고려인들의 이주 120주년을 맞이하여 지은 건물인데 고려인에 대한 역사관도 있어서 우리가 한국에서 알고간 정보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고려인들에 대한 단편적인 시각이 아닌 고려인들이 겪은 여러 사건과 역사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고려인 역사관을 둘러보고 난 후에, 고려인들이 우리를 위한 환영회를 준비했다면서 우리를 회관으로 안내했다.
그 곳에서는 정말 말로만 듣고, 책에서 눈으로만 보았던 고려인들이 앞에 앉아 있었다.
신기했던 점은 우리랑 정말 많이 닮았다는 점(북한 사람들과 더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더 신기한 점은 우리 나이 또래의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고려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고려인들은 우리에게 전통 춤인 부채춤, 북춤 등을 보여주었고
우리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전통춤사위를 보여주었다.
할머니들이 부르는 고려인 민요와 러시아 민요는 그들만의 음색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그네들만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위해 준비한 환영공연을 마친 후, 마지막에는 모두 모여 강강수월래를 했다.
젊은 고려인도 나이많은 우리네 할아버지들도 다같이 서서 돌자, 그래도 약간씩 어색해있었던 마음들이 서서히 풀려갔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세월을 지냈던 고려인.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닮아있는 고려인과 우리였지만 어느새 서로가 얘기할 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랬던 하루였다.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가깝지는 않고. 멀다고 생각했지만 멀지 않은 고려인.
내일 그들의 발자취를 더 따라가보면,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 따라가보면 더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
공항에서부터 피곤하다더니, 우울한 얼굴이더니
예쁜 고려인들 소녀와 함께 있을 때 화색돌고 더없이 밝아지는 진(28). 그러는 거 아니야 진 ㅋㅋㅋㅋㅋ
아니 거기있던 남자청년들 모두 그러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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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way의 탐방을 하던 중 길가에서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에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인종도 다양했고, 연령도 다양했다. 한 손에는 종이를 다른 한 손에는 목탄과 같은 펜을 들고 있었고, 서로 마주 앉은 사람을 그리고 있었다. 우연하게 우리에게도 그림을 그려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우리도 자리를 잡고 그림 솜씨를 좀 발휘해봤다.


그러던 중 역시 최고미남은 어딜가나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림을 그리던 분들이 우리들 중에 한명을 모델로 삼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주 최고 미남인 명준이가 자연스럽게 추천되었고, 모든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명준이는 가운데 앉게 되었다. ^^ (동영상을 첨부함, 그냥 재미로 보세여^^ㅋ)




그렇게 한창을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중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여행, 방문 목적을 얘기하게 되었는데,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우리에게 자신들의 활동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자신들은 이곳 westway에서 자선 사업을 하는 한 단체이고, 이 활동역시 그 활동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기회"라는 슬로건 처럼 이들은 지역의 주민들에게 개인 멘토, 직업소개, 글쓰기, 컴퓨터 활용, 그림그리기 등 다양한 워크숍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흔히 말하는 관공서나 평생교육센터의 문화 교실과 같은 수업들이지만 그 타겟영역과 목적이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지역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계층이 함께 공존하는 지역이다. 때문에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직업을 얻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많다. 때문에 이들을 위한 적절한 교육과 활동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단체의 팀장이신 Iris 씨와의 인터뷰도 가질수 있었다. (사실 먼저 관심을 보여오셨다. 동양에서 온 남자 3명이서 자꾸 얼쩡얼쩡되는 모습을 어제도 보셨다는 것이었다.^^ㅋㅋ) 예고된 인터뷰가 아니었고, 준비된 내용도 없었지만, 본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나름 좋은 조언도 해주셨다. 자신도 칠레에서 망명을 오게 되서 이런 활동을 하게 되었다면서 charity 라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활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본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들으신 후에는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거라고 조언해주셨다. 사실 자신들이 활동하는 영역도 결국에는 자신들보다 큰 사업체 혹은 재단에서 프로젝트를 따고, 재원을 기부 받는 형식이기때문에 해외에 와서 이런 활동을 연습하는 것은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당부하셨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며 조언해주셨다.
자신도 본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이 교육과 활동을 통해서 후에 얼굴이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환한 얼굴, 자신감에 찬 표정과 할 수 있다는 얼굴을 보면서 자신 역시도 활력소를 찾고,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기획하는 것역시 사실 무언가 거대한 사회를 바꾸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한 사람의 얼굴, 표정을 바꾸는데 초점을 잡아보는 것이 더욱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우린 아직도 거대한 거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서 알게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매우 임팩트 있는,
뜻 깊은,
배울점이 많은,
뒤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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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당빠당비치에서 마지막 날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Pink Coco Bali 경영자와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우연치 않게 Pink Coco Bali는 우리가 구상했던 자람 게스트하우스와 매우 비슷한 점이 많았다.
1.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숙소라는 점. 태국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가게들 가운데 잘 자리잡은 점.
3. 친환경을 추구하는 점.
4. 경영자와 모든 직원이 현지사람(그 지역 중심)이라는 점.

(Pink Coco Bali 간판. 이탈리안레스토랑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경영자 분과 인터뷰를 시작했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인 지역환원, 커뮤니티투어리즘, 수입 및 직원급여 정도, 에러사항 등을 물어봤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우선적으로 직원을 80%이상 현지사람을 고용한다. 또 지역에 어려운 아동들에게 음식을 지원하는 것을 검토중이 라고 한다.
원래 이 빠당빠당비치 지역이 그 지역 사람들이 오너인 곳들만 있었는데 처음 외지자본으로 세워진 케이스여서 많은 사람들이 시기했다고 한다. 또 주변과 다르게 비교적 럭셔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더 안좋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최대한 현지에 환원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지금은 일원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한다.
직원의 급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정한 최저급여+@라고 한다. 또 직원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고, 사기증진을 위해 직원을 위한 간단한 이벤트 제도가 있다. 천원정도씩 모아서 일주일에 한번 한명에게 몰아주는 식의 복불복놀이 같은 제도다.

(질문에 성심성의 껏 대답해 주셨다.)

(탕탕탕의 백조같은 리더, 죽빵양이 통역해 주고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씨즈 깃에 싸인과 간단한 메모를 해주셨다.

(싸인 중이신 CEO님.)

인터뷰를 마치며 고맙다고 인사드리니 오히려 자신이 고맙다며, 한국에 자신이 운영하는 숙소가 소개 될 수 있어서 좋다고 겸손한 말씀까지 해주셨다.
정말 훈훈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기념사진 찍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본인 핸드폰으로도 촬영하셨다. 혹시 사무실 한편에 걸려있을 지도 모른다.)

(숙박객들에게 부탁하는 팜플렛. 물과 전기를 아껴써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것 저것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저녁.
귀국할 날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저녁은 저번날에 감동을 다시 느끼기 위해, 또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피맥 + 스파게티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피자는 정말 일품이다. 그런데 스파게티는 맛없다.)

이 날은 서로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해보는 시간을 갖었었다. 덕분에 맥주 680ml 큰병 14병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빠당빠당비치에서의 마지막 밤은 지나갔다.
마지막 밤, 되돌아가고 싶은. 정말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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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분주하게 준비했다.
오늘은 스쿠터를 두대 빌려서 울두와루사원에 가기로 했다.
빠당빠당비치 주변은 관광객이 적고 지나다니는 차도 적기 때문에 스쿠터를 타고 다니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울두아루사원 입구)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다. 사원은 종교적인 곳이기 때문에 바띡이라는 발리고유의 천으로 허리아래를 감싸야 한다. 개인의 요구에 따라 가이드를 고용할 수 도 있다.


입구에 쓰여있는 한국어가 인상적이었다.
울두와루 사원은 원숭이가 많기로 유명해서 간혹 관광객의 안경, 모자, 카메라 등을 뺏어간다고 한다.


나는 개인소장의 바띡을 가져갔는데 그 곳 가이드인 할머님이 계속 이쁘다, 어디서 샀냐, 얼마냐 를 물어보셨다. 그리고 제대로 고쳐 매어주셨다.

드디어 울두와루 사원 입장. 경고문 때문에 설램 반 두려움 반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사방에 보이는 원숭이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길가에 앉아있는 원숭이 가족)

이 곳 원숭이들은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접근한다.
가만히 지켜보면 자는 새끼원숭이, 서로 다투는 엄청 큰 원숭이, 새끼 보살피는 어미 원숭이 등 재밌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울두와루 사원 풍경)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아서 자세한 정보는 듣지 못했지만 많은 원숭이들과 뛰어난 경관때문에 정숙한 분위기를 느끼진 못했다.

(낮잠자는 원숭이)

울두와루사원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는데 바다가 보이는 절벽 낭떠러지이다.
줄을 서서 차례로 낭떠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곳이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낭떠러지 끝 지점이다.)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우리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울두와르 사원 절벽 풍경)

감상을 마친 후 돌아가는 길에 조그만한 원숭이 한마리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내 모자를 낚아채려 했다.
너무 귀엽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는데 내 모자를 낚아채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심지어 내 무릎에 앉아서 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모자를 원숭이 손에 안닿도록 높이 들자 화가 났는지 내 천 허리띠를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댔다.
허리띠를 뺏자 갑자기 내 머리에 올라탔다. 때어내려고 해도 머리카락을 움켜지고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관광객들은 웃으면서 나를 지켜보는데 참 때어내느라 진땀났었다.
울두와루 사원을 나와서 스쿠터로 주변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운전하는 홍)

출출해진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떡볶이,순대 같이 흔한 길거리 음식인 박소를 먹기로 하고 박소를 파는 곳을 찾았다.

(박소.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이 일품이다.)

넷이서 한마디도 없이 한그릇씩 뚝딱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못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가 다 먹고난 그릇과 수저를 설거지 하시는데, 그 설거지가 참... 설거지가 아닌 뭐랄까.. 흑탕물에 한번 행구고 휴지로 마무리하는 그냥 하얀그릇을 하얗게만 하는 전혀 위생적이지 않은 그런 설거지였다.
우리가 먹은 그릇도 저렇게 닦은 그릇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불쾌했지만 뭐 이 나라 전체가 그러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해했다.

그 후 도착한 곳은 대형 리조트, 호텔이 모여있는 고급 휴양지에 위치한 해변.
드넓은 해안과 깨끗한 백사장. 정말 멋진 곳이다.
고급 시설들이 위치한 곳 답게 관광객밖에 없었다.

(여태 본 발리해안가 중 제일 깨끗한 곳이었다.)

해안에서 논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발리에서 유명한 음식인 바비굴링을 찾아다녔다. 바비굴링은 돼지의 여러부위, 여러요리를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바비굴링이다. 껍데기, 살코기, 비계 등 다양한 부위가 담겨있다.)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로 라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꼭 한번 먹어볼 만 하다. 그 나라 사람들이 자주 먹는 음식을 체험하는 것은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17호)

이 날은 많이 돌아다녀서 모두 피곤해 일찍 잠에 들었다.
모두 고생했고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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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르에서 빠당빠당 비치로 가보기로 정하였다.

발리의 관광,휴양지는 주로 남쪽에 몰려있는데 우리가 가려는 빠당빠당비치는 최남단이어서 많이 발달되있지 않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를 저렴하게 목적지까지 태워주신 택시기사님의 아들, 포동이 닮았다.

가는 길에 날이 너무 더워 현지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이스짬뿌르 라는 것을 먹었다
약간 과일빙수 비슷한데 연유맛이 강하고 젤리가 많다.

(아이스 짬뿌르)

(치사하게 혼자 명당을 차지한 울보찡찡이)

날씨는 차 밑에서 궁상떨며 햇빛을 피할 정도로 섬 전체가 찜통같은 열기였다.

드디어 도착한 빠당빠당 비치. 숙소를 구하기 위해서 우린 무거운 짐을 들고 이곳 저곳을 헤매었지만 휴가철인 관계로 적당한 방이 없어서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비치헛 이라는 아주 가파른 돌과 언덕을 내려간 곳에서 본 해변경관이 더위와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는 솔직히 뻥이롱)

(비치헛에서 본 빠당빠당비치 풍경)

(비치헛 전경)

하지만 아쉽게도 방이 없어 우선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근처 음식점으로 향했다.
이 곳의 특징은 가게, 숙소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거의 반독점수준의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발리에서 가장 많이 먹은 미고랭(볶음면)과 생과일주스. 과일주스는 맛도 좋고 값이 싸다. 만약 발리에 가게 된다면 탄산음료보다는 과일주스를 많이 마시기를 추천한다.

잠시 휴식 끝에 다시 방을 구하러 다녔는데 뜻 밖에 인정좋은 경영자님 덕분에 3인방가격으로 4인이 묶을 수 있었다.
(4명 1박 60만루피, 1명당 1박 15만루피 꼴)
이름은 Pink Coco Bali. 온통 적색의 벽으로 이루어진 아주 멋진 곳이었다.
우리는 제한된 돈으로 일정을 최대한 늘렸기 때문에 항상 방갈로 이하 수준의 숙소에서 지냈기 때문에 이 곳은 거의 천국이었다. (당시에는 뜨거운 화장실 물이 콸콸콸 나온다는 점이 가장 설레였다.)

(우리가 지낸 방. 붉은색으로 멋스럽고 내부도 넓다.)

또, 숙소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어 우리는 모두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수영을 못해 얕은 물에서 혼자 신난 상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깊은 물로 들어갔다.
수영장 주변에 비치체어와 파라솔, 간이탁자가 있어서 다른 관광객들은 그 곳에서 잠을 청하거나,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곤 했다.

(아래쪽에 위치한 비교적 깊은 수영장과 주변에 비치체어)

참 재미있게 놀았다. 물하나 있을 뿐인데 바보들 같이 깔깔거리며 놀았다. 주변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다.

(두 손 밑에는 두 개의 머리가 있다.)

수영을 마치고 씻고 짐정리하고 슬슬 주변탐방을 해볼까 하고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날이 급히 어두어지는 바람에 결국 다음날로 미루었고 저녁거리나 사러 가기로 했다.

(어두어질 무렵 풍경)

(저녁으로 먹은 바질피자)

지금 한국에서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이곳에서 같이 먹은 피자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먹는 피자보다 더 맛있었다.
왜 서양사람들이 치맥보다 피맥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밤새 웃고 떠들다 잠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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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며칠동안 재정비 시간을 갖다가, 북부에 위치한 뿌리로 이동을 했지

한국에서는 뿌리 사례를 꽤 열심히 공부하고 인터뷰 때 묻고 싶은 질문들도 잘 정리하고 그랬었는데

막상 가는 날이 다가오니 그런 긴장감은 제로 ........

우붓 마지막에 묵던 숙소 (내 결벽증 게이지를 100에서 20 정도로 낮춰 준) 덕분에 피곤에 쩔어서 몸도 마음도 멍했던 것 같다

 

내가 포스팅하는 사진 중 절반 이상은 애들이 찍은 사진 도용 방긋

나는 사진기를 꺼낸 기억이 언젠가부터 없어요

휴대폰 카메라에도 개별일정 사진만 가득......

 

아무튼 도용을 허락 해 주신 서홍근 김여나 이로베님께 감사하며

내멋대로 포스팅을 시작 해 볼까나

 

 

첫 사진부터 기억이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졸렸었나

이게 갈 때 찍은 건가 올 때 찍은 건가 ................

아무튼 발리 섬에 있는 호수 중 하나 , 예쁘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았지 . 노 감흥..

내가 찍은 건 호수가 아니라 탕탕이들의 뒷통수 ^,^

 

 

잠깐 시장에 들렀는데, 뿌리에서 식사가 포함됐는지 모르겠어서 전화를 해 봤다

포함이 안 되어 있다길래, 거긴 비쌀 게 분명하니까 여기서 때우고 가자 !!!!!!!!!!!!! 만 장 일 치

우리를 픽업 나오신 운전기사 분은 영어를 잘 못하셨다

진짜 영어 잘 하는 사람은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과의 의사소통도 원활할 수 있어야겠지 ?

근데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지 못 하는 분을 만날 때 마다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런 쪽으로는 우리 로베가 또 ~ ㅋㅋㅋㅋㅋㅋㅋ

모기약에 모기'향'까지 설명 가능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그 분이 자꾸 여기서 먹지 말고 다른 곳에 좋은 데가 있다고 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

우리가 아무도 못 알아들어서 ㅠㅠ 그냥 여기서 먹자고 우겼지

 

결국 현지인들 먹는 거 똑같이 달라고 했다가 토끼고기 꼬치 먹고 ^.^ 

나중에 깨달은 게

거긴 경치도 좋고 가격도 싸고 음식도 더 맛있는 곳이었다는 것 ............

여긴 시장이어도 관광객들 상대로 하는 곳이라 엄청 비쌌음 ..................

 

인도네시아어, 비록 한 달 정도 밖에 공부를 못 해서 엄청 허접이었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배운 게 어찌나 다행이던지

인도네시아 가는데 '영어가 공용어니까 ^.~' 이러고 갔다면 내 자신한테 많이 실망할 뻔 했음

 

어쨌든 토끼는 인도네시아 말로 ? 끌린치 꺄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뿌리는 음...  고급 리조트 단지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깔끔한 건물 내부, 최고급 식사, 잘 숙련된 종업원들

우리는 복층으로 된 패밀리 코티지를 빌렸는데,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호화로웠다

바로 이전에 묵었던 숙소랑 비교되서 더 좋게 느꼈을지도 ..............

 

 

새하얀 시트가 이렇게 감동적일줄이야 ㅠㅠ

 

화장실까지 찍은 찍사 홍

나랑 윤주가 쓴 화장실은 샤워하는 곳 천장이 뻥 뚫려있었다

 

 

이런 테라스에 나와 앉아

웅장한 산을 마주하고는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곤 했지

 

 

나 자는 사진도 있구나 ㅋㅋㅋㅋㅋㅋ

정말 피곤했었어

도착하자마자 꿀잠잤당

 

 

식당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마을이 훤히 눈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보는 거랑 직접 돌아다니는 거랑 많이 다르다

눈에 확 띄는 거는 빨간 꽃 !

발리는 어딜 가나 이렇게 집집마다 색색깔의 꽃이 만발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꽃 같이 순수하더군 ..........  

 

 

뿌리룸붕에서의 첫 저녁식사

역시 비쌌다

음식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맛도 별로였겠지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로베와 홍은 술 한잔 하겠다며 바로 ...

지금 기억은 안 나는데 회의 중에 뭔가 갈등이 있었다

이유도 기억 못 할 일로 뭐 그렇게 다퉜는지 ... ㅠ_ㅠ

나중에 나랑 윤주도 슬렁슬렁 걸어 가서 애들 옆에 앉아 조용히 술을 마셨지

내가 시킨 건 사진엔 없지만 '브룸'이라는 발리 전통 와인

투명한 핑크빛 액체인데 달큼시큼한 것이 전혀 와인 같지는 않지만 나름 매력있던 술

 

 

그리고 아침

숙박에 조식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숙소에 따라 그 질은 천차만별

이 곳은 고급 리조트에 맞게 아침식사 하나는 뷔페식으로 잘 제공되었다

우리 쫌 많이먹었음 ....... ㅋㅋ 식사가 아니라 거의 비축 정도로 ㅋㅋㅋ

 

 

 

 

그리고 이어진 설립자와의 인터뷰

 

 

뿌리는 Community based Tourism의 성공사례로

사진에서 보이는 분이 호텔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 후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사업을 시작하셨다

발리에 물 밀듯 들어오는 매스 투어리즘에 대항하여 '현지 사람들'을 고용하고, '현지 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구조로, '현지 환경'을 보존하며, '현지 문화'를 지키고 알리는 방식으로.  제드와 비슷한 점도 많지만 제드 같은 경우는 관광은 부수적인 활동이고 농사일을 주업으로 삼는 데 반해, 뿌리는 일단 이 자체가 마을의 핵심적인 사업이고 그 만큼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체계적이었다는 것이 눈에 띄는 차이점이었다

 

인터뷰만 포스팅 해도 한 나절 걸릴 정도로 많은 정보와 교훈을 얻었지만

그건 보고서 작성 때 하기로 .... ^^

 

 

Love is the basic thing to maintain everything.

이라는 메세지를 남겨 주신 설립자 할아버지

 

인터뷰 내내

<가장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뿐>

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떠난 사이클링

바보 같이 웃고 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주는 쿠킹클래스를, 로베는 몸이 안 좋은 관계로 휴식을, 나와 홍은 자전거 사이클링을 체험 해 보기로 했다

 비가 많이 와서 우비까지 입고 출발

나 헬멧 쓴 것 가지고 엄청 놀리던 이로베 .........

죽빵이 튀어나왔다나 다람쥐 같다나 뭐라나

난 괜찮아

젖살은 곧 빠질테니까

 

 

출 바알~~~~~~~~ !!

계속되는 내리막길

소리를 질러대며 ㄱㄱ

정말 시원하고 짜릿했지요

 

 

작품 찍었네 서홍큰

이 때 쯤이었나, 달린 지 3시간 정도 되었을 때 지나가는 분들께 우리의 목적지를 여쭤봤더니

정 반대방향으로 왔다고 .................

3시간 동안 내리막길만 내달린 것은 즉 돌아가려거든 3시간을 오르막길만 가야한다는 것

여행자가 가진 복 그대로 살려 <대책없이> 가던 길 쭉 가기로 했다

너무너무 가고싶었지만 너무너무 멀어서 포기했던 로비나 비치로 !!!

 

 

우비 벗어버리고 다시 내리막길 달려달려

 

 

더워 죽겠다 싶을 때 자전거 던져버리고 잠시 쉬기

서홍근이 찍는 거 눈치 채고 고개 돌렸음

지금 생각해도 정말 현명한 처신이었음

 

 

터질꺼에요

태환오빠는 이렇게 말하겠지

비비크림이 빨간색이야

 

 

상대적으로 멀쩡한 홍 클로즈업

사진크기 줄이고 이런거 없음 ^.~

 

그렇게 몇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로비나 비치

인 줄 알았던 비치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운 좋게 당도한 우리

신기해 하는 마을 아이들과 허접 인니어 셋트 의사소통 ^^

이상하게 요 아이들은 잠깐 마주친 건데 얼굴이 한 명 한 명 다 기억이 생생해

 

 

로비나 비치는 여기가 아닌가바

우리 넷 중에 인니어 제일 잘 하던 홍

발리 떠나기 전에는 현지인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 ㅋㅋㅋㅋ 독학의 힘인가여

 

 

'진짜' 로비나 비치를 찾아 다시 달려 ㅜㅜ

이 때 많이 힘들었다

허벅지에 감각이 없었지만, 시쳇말로 '빡쎈' 여행 좋아하는 홍근이한테 폐끼치고 싶지 않아 이 악물고 폐달을 밟았지 ㅋㅋㅋㅋ

다음 날 근육통 ~.~

 

 

그리고 잠시 옆 길로 새면 폭포가 나온다길래 갔더니만

 

 

폭포는 이게 끝이고

저 남자애들 두 명한테 삥뜯김 ㅋㅋㅋㅋㅋㅋㅋ (저렴한 표현이지만 더 이상의 표현은 없어)

 

 

로비나 비치

 

 

그림같다 ..

 

 

대책 없이 신발 벗고 진흙에 풍덩

 

 

밴드 붙혔던 자리가 유독 깔끔한 내 발 .......... ㅋㅋㅋㅋㅋㅋ 이런 사진으르 제일 좋아하던 홍

약간 의심 해 봐야 할 듯

 

 

애들이 걱정할까봐 뿌리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부터 걸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화 받은 사람이 애들한테 바로 말을 안 해줘서 애들이 엄청 걱정하고 ㅜㅜ 트럭타고 우리 찾아다녔다는 ...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이 순간을 즐겼지 (애들아 미안해)

 

 

마음이 달달하게 노곤해지던 순간

 

 

맥주

일기

담배

카메라

정적

석양

 

 

 

맥주보단 소주를 즐기는 내가

'맥주 맛을 알 것 같아' 라고 말할 만큼 달달했어

다시 사진을 봐도 울컥

 

 

씨푸드 스페셜

스페셜을 시킬 만큼 굉장히 저렴했던 현지식당

맛도 뿌리랑은 비교가 안 될 만큼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해가 저물고 나서야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

아무리 대책이 없었기로서니 ..... 이대로 자전거만 타고 가기엔 아침이 밝아도 도착하지 못할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은 달려보자 ! 하고 있는 힘을 다 바쳐 달렸건만

한 시간이나 달렸나 ?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앞은 안보이고, 무섭고 .......... ㅜㅜ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실패하고, 길거리 음식 파시던 아저씨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잡아타게 되었다

 

 

아직도 '발리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하면 이 때가 떠오를 정도로

가슴이 벅차 아저씨 뒤에서 엉엉 울었더랬지

 

이 감동은 이 날 쓴 일기로 대체

읽어도 읽어도 감동은 그대로 :-)

 

 

 

<이 날 일 기>

우붓을 베이스캠프로 잡고, 발리 북부의 문둑으로 이동했다. 뿌리룸붕이라는 대형 숙박시설이 있는 산간마을이었다. 뿌리는 community based tourism의 성공사례로 Mass tourism의 폐해에 저항하여 올바른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관광정책을 펴고 있는 곳이었다.

미리 요청해놓은 자동차에 올라탔다. 해가 더워지는 날씨였다. 관광객들로 들어차 상업적인 냄새가 심심찮게 풍기는 우붓에서 조금 벗어나니 금새 때묻지 않은 리얼 발리가 보인다. 역시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다.

구불구불한 산길 속 구름을 헤치며 달리다 시장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테이블에 앉아 다짜고짜 현지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가리켰다.

먹음직스런 음식이 나온 후
아빠 이니? (이게 뭐에요?) 하고 물으니 토끼고기란다.
오, 마이, ......
별 수 있나. 심호흡 한 번 크게 내쉬고 맛있게 먹는 수 밖에.

뿌리룸붕은 잘 조성된 리조트와 같은 느낌이었다. 호화스럽고 깔끔한 건물내부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종업원들이 잘 짜여진 체계와 어우러져 편리함을 제공했다. 관광객은 모두가 서양인이었다. 장기로 숙박하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듯 보였다. 저녁을 먹고, 빨래를 하고, 간단한 회의를 하고, 바에 가서 술을 한 잔 했다. 나는 이 곳 전통 와인 브름을 마셨다. 분홍빛 투명한 액체가 달큼시큼했다.

다음 날 아침, 설립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역시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발리에 관광객들이 대량 유입되고 외국 자본이 밀려들어와 그들의 문화와 환경을 해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이 곳을 설립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말했다.

Love is the basic thing to maintain everything.

신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물, 불, 흙, 바람, 빛이 그것인데 모든 것은 이들로 만들어졌지요. 인간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굴러다니는 오토바이도 그래요. 이 다섯가지만 있으면 세상이 살아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신이 다 마련해 놓으셨고 우린 이들을 잘 지켜야해요.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유지하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며 각자의 관심분야를 정했다. 로베는 트레킹을 웅은 쿠킹클래스를 나와 홍은 사이클링을 하기로 했다. 비가 우억스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홍과 난 헬맷을 쓰고, 우의를 입고, 가느다란 선이 몇 줄 죽죽 그어진 지도를 한 장 들고 빗속을 내달렸다.

뿌리를 찾는 수 많은 관광객들은
그 안에 조성된 부족함 없는 서비스만 이용하며 휴양을 즐기다가 떠나나보다. 자전거로 약 이십분 정도 달려 마주한 마을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져 우리를 응시했다. 어떤 이들은 입이 찢어져라 함박스런 웃음을 지으며 헬로! 헬로! 인사를 한다. 우리가 '슬라맛 시앙! 시앙!' 하면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가 또 다시 웃는다.

온통 열대나무로 뻥 뚫려 하늘과 닿을것만 같은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시원한 산바람이 온 몸을 스쳤다. 홍이 소리쳤다.
오호홋~~~~!!!!!!!!!!!!!!
나도 소리쳤다.
아~~~~~~!!!너무조타아아아아!!!!

소리를 질러대며 한참을 더 내달리다 지도를 펼쳐 길을 물으니 우리가 정 반대 방향으로 왔단다. 호숫가는 동쪽에 있는데 우리는 서쪽으로 15키로를 달린 것이다. 대신 그 길로 왔던 만큼을 더 달리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개인일정때 가려다가 너무 멀어 포기했던 로비나비치.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엉덩이가 베기고 얼굴이 발갛게 익었다. 티셔츠는 땀으로 흥건한데 얼굴엔 여전히 미소가 흠흠했다. 그렇게 네시간을 달려 바닷가에 닿았다.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곽마을인 듯 했다. 우리를 보고 아이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둘러싸 반갑다 인사했다. 내 어눌한 인니어를 따라하며 키득키득 웃는 아이들에게 아는 문장들을 죄다 동원해서 말을 걸었다. 한 아이가 악수를 청해 손을 잡으니 열댓명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건냈다. 그 중 한 아이는 수줍은 미소 뒤로 손을 감추며 제 손이 더러워 안된다고 했다. 내가 한국말로
괜찮아~~~~!! 손 잡자!
하니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슬그머니 손을 내민다.

삼빠이 줌빠 라기! (또 보자!)
하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한참을 더 달리니 <진짜> 로비나비치가 나왔다. 관광지화 된 로비나는 따로 있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현지인들만 가는 곳인 듯 보였다. 심장이 웅글웅글해지는 석양 아래로 구릿빛 피부의 이들이 몸을 담그고 있었다. 한 사내가 나뭇가지를 세워 꽂아 옷을 걸친 자리가 보였다. 나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물에 발을 담갔다. 한참을 걸어다니다 다시 양말을 신어야 할 때가 되자 홍이 어쩌려고 진흙을 뭍혔냐며 대책없는 여자라고 면박을 준다. 자전거만 없었음 벌거벗고 들어가고도 남았을꺼면서....

우리는 부둣가에 앉아 젖은 발을 말리며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구릿빛 그들이 그림자 실루엣같은 형태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배가 고파 져 근처 식당을 찯았다. 우리는 구운 생선요리와 맥주를 주문하고 바닷가쪽으로 길게 놓여진 타일 테이블에 앉았다. 숨이 턱 막힐정도로 황홀한 석양의 파노라마가 길었던 하루의 마무리를 장식해주었다.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홍은 담배를 태우며 사진을 찍었고 나는 고개를 숙여 미친듯이 글을 적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들 때마다 하.... 하고 낮게 감탄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
홍이 말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다.
구름 사이로 저무는 붉은 노을이 바다와의 경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스스로 수평선에 녹아들었고 서너척의 작은 배들이 춤을 추듯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아름다웠다.

저녁을 먹고, 밤빛이 깜깜해지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홍이 담배를 태웠던 성냥개비를 집어들고 끄적거렸다.

'worry less in Bali.'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칠흙같은 어둠을 한참동안 달렸다. 더 이상은 못가겠다 싶을 때마다 잠시 도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땀을 식히고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얼마쯤 달렸을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자전거를 내동댕이치고 주저앉아 히치하이킹을 시도 해 보았지만 우릴 보고 길을 멈추는 차는 흥정하는 택시뿐이었다. 옆에서 먹거리를 팔던 중년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우리의 목적지를 묻더니 깜짝 놀라며 이 밤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조카에게 부탁해서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15만루피아를 요구하는 그의 얼굴에서 악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상 차로 사오십분은 걸리는 곳이었고, 밤이었고, 택시기사들은 30만을 불렀었다. 우리가 고민하며 우린 가난한 배낭여행객들이라고 말하니 그럼 오토바이를 빌려주겠단다. 두 대 합쳐서 십만.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이 밤에 자전거를 양손으로 들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오토바이로 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불렀다. 현지인들이 하는 그대로 운전사 뒤에 자전거를 뒤집어 세우고 그 양쪽을 잡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안전벨트를 대신했다. 몸의 긴장이 완화되는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금새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불빛이 없는 산길로 접어드니 별이 쏟아질 것 같았다. 빌딩도, 차도, 심지어 나무도 없다. 그저 하늘이다. 끝없이 탁트인 밤하늘에 별이들이 가득하다. 나는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 아름답잖아요....
기사가 뒤돌아보며 무슨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바구스. 바구스 스깔릿. 짠띡.
사야 찐따 발리..
(좋아요. 너무 좋아요. 예뻐요.
저는 발리를 사랑해요.)

기사가 웃으며 끄나빠 다땅 발리 하였다.
다땅? 오다? 아 왜 발리 왔냐고?
(늘 이런식이었다.)

나는 잠시 한국어로 대답할지 영어로 대답할지 고민했다. 내가 아는 인니어가 바닥났을 때, 상대가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 나는 한국어로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말을 했지만 상대가 영어단어를 조금이라도 알고있을 땐 영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Well.. I am here for traveling obviously. I want to experience the real Bali. I want to eat what Balinese eat and I want to do what you do. I am really happy to ride a night bike with holding my push bike on hands. It's exactly the same as what you do. Isn't it.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겨우 일주일 되었다. 앞으로 남은 이십여일이 어떠할 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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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이지만 나는 무식할 정도로 고지식하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특히 나 자신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서는 정말 유연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면도 제법 있는데..

이 날은 정말 많은 감정이 들었던 날이었지.

"발리를 발로 걷겠습니다." 이게 우리 팀의 각오였었다.

평소에는 아해들과 함께 탐방일정을 해야하니 개별 여행때 한번 제대로 걸어보자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내가 세운 계획은..
아멧에서 해안을 따라서 걷기 시작해서 약 100km의 거리를 한 3일만에 걸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자는 생각.

4일동안 머물렀던 Jos homestay에서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해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전날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왔었던 아멧의 끝자락까지는 뭐 별탈 없이 잘 걸어왔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지.

아멧을 벗어나고부터 등장하는 마을들은 말 그대로..흔히 말하는 쌩깡촌 어촌마을이다.
외국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곳.
우리나라에서 예로 들자면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궁촌항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나.
(삼척의 궁촌항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건 아니다.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은 정말 깡촌 어촌마을이라서 그런것일뿐)

삼척의 궁촌항에 서양사람이 나타났다면? 관심이 집중되는건 당연하겠지?

내가 발리 동부를 걷고 있을때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아. 내가 외국인이다보니 신기해 하는구나.
영어라고는 정말 헬로우 이 한 단어만 통하는 그런 곳.

알고 있는 모든 인도네시아어를 동원해서 인사를 하고 소개를 하며, 그들의 사진을 찍었다.
중간중간 마을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나도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

그런데 문제는 혈기왕성한 젊은 녀석들이었다.

정말 깊숙히 들어와서 다시 되돌아 갈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위치에 와 있을때쯤 일거다.

내가 마을과 마을 사이의 휑한 길을 한참 걸어가고 있을때 쯤 집 한 채가 있고, 역시나 외국인인 나를 보고 말을 걸어오더라.
난 또 인사를 하고 계속 걸어가려는데 나보고 와서 앉으라고 하더라.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그러면은 안되는 거지만, 뭔가 날라리 같은 그런 냄새가 확 풍기더라.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되지 하면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름이 뭐냐, 어디에서 왔냐, 어디로 가냐, 걸어가냐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고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나를 조금 붙잡는 듯한 그런 느낌.

그리고 내가 가진 물건들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들.
처음에는 호기심이려니 했다. 약간은 쌔한 느낌이 들지만서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고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는 주요 교통수단이 오토바이나 스쿠터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나 스쿠터를 정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타고 다니는 그런 곳.
그런데 갑자기 부~~~~~~~~~~웅 하면서 오토바이 2대가 다가오더니 내 옆에 멈추더라.
방금 전 만났던 혈기왕성한 조금은 날라리 느낌이 나는 이 아해들.

나를 태워다 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걸어서 가고 있다며 괜찮다고 말하며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그들을 돌려보냈다.
한 십오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또 오토바이소리가 부~~~~~~웅 하는데..숫자가 꽤 많더라.

아까 그녀석들 포함해서 한 8명정도 되는 아해들이 내 옆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아...............................
뭔가 무섭다.
그때부터 나의 공포는 시작되었다.

아는 인도네시아어도 한정이 되어 있으니 그냥 웃으면서 다시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녀석들이 길을 막고 말을 걸어온다.
뭔가 삥뜯기는 그런 기분.

내 물건 하나하나를 만져보면서 자기에게 주면 안되겠냐.
내가 신고 있던 쪼리를 가리키며 내 쪼리와 바꾸자. 뭐 요런 말들.

애써 웃음을 지으며 난 안된다고, 오늘 목적지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면서 조금은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아..진짜..무섭다.

빼도박도 못하는 그런 곳에 들어왔어.
내가 과민반응을 하는 걸까.
정말 그들은 순수한 호기심인데,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머리속을 굴리고 굴리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정말 이런데서는 객사해도 아무도 모를거야...
아직 죽기엔 너무 이른데..

이제 나를 스쳐지나가는 오토바이 마져도 무서울 지경이다.

그와중에 드는 생각들은 한비야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이런 생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찌되었건 걸음에 속도가 점점 붙기 시작한다.
그녀석들이 또 쫓아오면 어쩌지?? 라는 공포감에 휩쌓여 걷는데 다행히 마을이 등장하더라.

마을이 보이니 그래도 조금은 안정이 된다. 나이가 조금 있는 어르신들도 보이고, 다시 평온한 마음을 되찾아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 가족들과 어울려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것도 얻어먹고 사진도 찍는다.


역시나 우리의 의사소통 수단은 인도네시아 어 뿐이다.
내가 아는 단어도 한정이 되어있기에 그때부터는 바디랭귀지를 써가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걸어가는 나를 보며 고생한다며 먹을 것도 챙겨주시던 분들.
역시 어디를 가든 나같은 거지여행자는 좋은 인연들을 만나나 보다.

진심인지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가달라고 말하던..
오늘 하루 여기에서 자고 가는게 어떻겠냐던..
사진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말씀하시던..

아..지금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하루 자는게 정말 최고였는데..
아까 만났던 그 혈기왕성한 날라리 느낌의 청년들 때문에 난 너무 무서워했었어.
아저씨한테 고맙지만 난 계속 가야할 길이 있다며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마음착한 아저씨는 가는길에 먹으라며 바나나까지 챙겨주시고, 담배도 한개피 말아주신다.
정말 고마워요 T^T

그렇게 말아주신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마을의 끝이 보인다.

그런데....................

마을 끝에 아까 그 혈기왕성한 날라리 청년들 포함에서...이번엔 거의 20명 가까운 인원이 도로에 오토바이를 대놓고 진을 치고 있다...

아.....................................좀!!!
그때부턴 정말 무섭다기 보단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라.

사람을 미워하면 안되건만..상황이 상황인지라..
말도 안통하니 욕을 할 수도 없고.

될데로 되라는 식으로 그들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에게 말을 걸며 내가 가진 물건들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만지는 아해들.
하지만 이제 무서움따위는 집어치우고 좀 빡쳐버린 나는 인상을 써 가면서 아해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을 했지.

안그래도 험악하게 생긴 얼굴인데, 인상을 쓰니 아해들에게 좀 먹히나보더라.

의기소침해진 아해들을 놔두고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걸었다.
그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더랬지..

아..정말 서홍근 아직 멀었구나.

정말 대낮인데도 무서울수도 있구나..사람이 정말 무서운거구나..라고 느꼈었던 하루.
하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 또한 느꼈던 하루.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가라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던 하루.
무소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었던 하루.

어쨌든..현지사람들과 동화되려면 더 많은 내공이 필요하겠다. 홍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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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탐방 때 내가 선택한 장소는 아멧(Amed)이다.
뭔가 동쪽을 보고 싶다는 열망 이런것 까지는 아니지만 왠지 이름이 마음에 들었었던것 같다.
게다가 아궁산이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도시이기도 했고 말이지.

아멧은 동양인이라곤 정말 눈을 비비고 또 비벼봐도 찾을 수 없는 그런 동네.
이곳은 스노클링과 스킨 스쿠버로 유명한 동네로서 대부분 찾는 사람들도 독일이나 프랑스 계통의 유럽인들이 대부분인 동네.
난 처음에 셔틀 버스를 타고 이 동네에 내렸을 때 들었던 생각은..

흠..뭔가 조금은 외진 어촌마을 이구나. 라는 이런 생각을 강하게 받았었던것 같다.

개별여행이다 보니 돈은 어떻게든 아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숙소를 찾는데 Rp. 100,000짜리가 있다는 정보도 이미 듣고 왔기에 나를 호객하려는 호텔 직원에게 말했더니 그가 소개 시켜준 홈스테이는 바로 Jos homestay라는 곳이다.

Rp. 100,000이면 우리 돈으로 만원이 조금 넘는 돈.
우리가 그동안 잤던 곳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가격으론 정말 후진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외곽이라 그럴까. 시설도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

뭔가 조금은 억세보이는 주인 아저씨 꾸뚜.
정말 그 아저씨 덕분에 이곳에서 4일이라는 시간을 머물며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지.


내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마치 자기 일인양 두 발 벋고 나와서 도와주고,
혹시나 내가 필요한게 있으면, 어떻게든 알아보고 도와주던 꾸뚜.

현지 체험을 좋아라하는 날 보고, 어떻게든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던 꾸뚜.
덕분에 돼지 잡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닭싸움도 볼 수 있었으며, 현지인들만 아는 만담회에도 갈 수 있었드랬지.


떠나기 전날 밤. 그와 함께 홈스테이 앞에 찾아온 박소 아저씨한테서 박소를 사 먹고 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난 그에게 혹시 맥주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좋아하지만 비싸서 많이는 못 먹는다고 하더라.

나는 그에게 오늘이 떠나기 전날 밤이고,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준 많은 호의들이 너무 고마워서 맥주를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동네 슈퍼에서 맥주를 한병씩 사서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리고..정말 엄청난 충격이라고할까..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맥주는 거의 마시지 못한단다.
외국인인 우리도 맥주의 가격이 현지 물가치고는 상당히 비싸다고 느끼고 있었는데..그가 한 말은 거의 충격이었다.

꾸뚜의 경우에는 맥주를 거의 1년에 1,2번 정도밖에 마시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꾸뚜뿐만이 아니라 발리의 대부분의 현지인들이 그렇단다.

맥주 1병의 가격은 Rp. 25,000정도.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가다의 임금은 하루에 Rp. 60,000정도 된다.
맥주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대충 가늠을 할 수 있을 듯.
하루 열심히 막노동을 해야지 맥주 2병 조금 넘는 가격이 나온다.

워낙 술을 좋아라 하는 나로서는 그말을 듣고..흠..뭐라고 해야하나. 이거.
그동안 내가 마셨던 술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지.

그렇게 부어라 마시던 술이 이들에겐 정말 엄청나게 고급스런 그런 것이였어..

그날 이후 맥주를 마실 때마다 수많은 생각들을 했었지.
이거 두 병이면 발리 사람들의 하루 임금이구나.

과연 맥주를 사먹는 우리를 발리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그렇다고 술을 안마실 순 없지만.. 뭔가 생각이 많았던 그런 맥주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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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나의 인연에 대해서 말하자면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께서는 무척이나 산을 좋아라 하신다. 덕분에 어린시절의 나는 아버지 취미생활에 희생이야 되곤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였나..산이라는 산에는 정말 셀 수없이 끌려다니곤 했다.

주말만 되면 아버지가 배낭을 꾸리셨는데..그 모습은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보이곤 하셨다.
반면 나의 표정은 다음날을 생각하며 어둠의 나락으로 빠지곤 했었다.

산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올라가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고,
겨울에는 당시에는 내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쳐나가고, 그 눈을 녹여서 라면을 끓여 먹었고,
여름에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글 수 있었으며,
이 고개만 넘으면 끝이라던 아버지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속아가며 아버지와 진솔한 이야기들도 나눌 수 있었으니깐.

내가 싫은 것은 그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정신도 못차린 상태로 깨어나서 산 아래까지 이동하는 동안 새우잠을 자고, 다시 비몽상태로 일어나서 그 험난한 고개를 올라야 하는 그 순간이 정말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부터였나. 공부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더 이상 아버지의 산행에 동행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어느새 여행이라는 마법에 걸려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배낭을 꾸리고 있는 순간 행복을 느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산이든 여행이든 '난 어쩔수 없는 아버지의 아들이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래서 발리에서 개별여행을 할 때 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선택 한 곳이 바로 아궁 산(Mt. Agung)이다.
아궁 산은  발리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서 해발고도는 3,142미터이다. 발리 섬에서 제일 높은 산이기에 발리 사람들에겐 신성하게 여겨지는 산으로서, 발리 전역에서 Agung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1960년도엔가 폭발을 하기도 했었던 화산으로 이곳에 트래킹을 갔던 사람들 중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꼭 현지가이드를 고용해야 한다고 한다.

우붓에 있는 동안 아궁산으로 가는 방법을 물색하기 위해 여러 여행사들을 돌아다녔었는데, 최소 2명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가격이 배로 든다고 한다. 2명을 구해도 가격이 Rp. 750,000로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십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아궁산 트래킹은 새벽에 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정상을 찍고 일출을 보는 것이다.

우붓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해보려고 여행사에 부탁을 해서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딱히 찾을 수 없었기에, 나는 일단 우붓을 뜨자는 생각으로 발리의 동쪽해변에 위치한 아멧으로 이동을 했다.

아멧에서 머무는 동안 홈스테이 주인인 꾸뚜와 이야기를 해서 혼자 가는 대신 Rp. 800,000에 예약을 할 수가 있었다.

자정에 홈스테이에서 출발해서 새벽 두시에 도착을 해 바로 산에 오르는 일정이다.

하필 그날 스노클링을 한 탓에 온몸은 녹초가 되어버렸고, 이틀 뒤 발리의 큰 축제인 갈룽안 데이가 있어서 마을에서 돼지 잡는 것을 구경하던 탓에 열시쯤 잠들어서 거의 두시간 밖에 자지 못한채 똑똑 하며 내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꾸뚜의 사촌인 마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인사를 나누고 차에 몸을 싣고 아궁산으로 향한다.


차에 탄지 한 십오분 정도지났을까. 간단한 소개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나를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어느새 차는 아궁산 아래쪽인 빠사르 아궁이라는 신전에 도착을 했다.

마띠가 말하길 아직 가이드가 도착을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차 밖으로 나와서 잠을 깨기 위해 담배를 한대 피우며 주변을 쓰윽 둘러보는데, 정말 칠흙같이 어둡다.
저 멀리 덴파사르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이곳의 위치도 상당한가 보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고요함을 뚫고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오토바이는 우리 앞에 멈추고 두 사람이 내렸다.
건장해 보이는 남자 한 명과...다소 왜소해보이는 남자가...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데...왜소한게 아니라 가냘픈 여자아이다.
나의 가이드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 아이의 이름은 마띠. 하필이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마띠와 이름이 같구나.
나이는 18살이고 이 근처의 마을에서 살고 있단다.

언뜻봐도 나보다 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기에 나도 당황한 표정은 지우고 오늘 트래킹을 잘 부탁한다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드디어 트래킹의 시작인가..

등산로의 입구에서 마띠가 잠깐 기도를 드릴테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발리 사람들에게 신성한 산인 만큼 무사한 트래킹이 되도록 신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볼까 잠깐 생각을 해보지만 경건한 행동에 혹시나 누가 될까봐서 차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옆에 그냥 서 있는다. 그녀가 기도를 드리는 동안 나는 옆에서 뻘쭘하게 서 있기 모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외에도 몇 사람들이 등반을 하려는지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기도를 마치고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내기에 출발 전 사진 한 장을 부탁해본다.


산행 코스는 약 6시간 정도가 된다고 한다.
밤하늘의 별빛과 머리위의 랜턴 그리고 내 앞에서 씩씩하게 걸어가는 마띠 신발의 반사된 불빛에 의지한체 걷기 시작한다.
트래킹 코스로 진입하니 울창한 수풀에 가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띠에게 우리가 출발한 지점의 높이가 몇 미터나 되냐고 물으니 약 1,700미터 정도 된단다. 그렇다면 정상의 높이는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3,900미터란다. 무슨소리하는거야 마띠..분명히 지도에도 3,142미터라고 되있는데..그럼 난 거의 죽는다고..

마띠는 말하길 아직 영어는 배우고 있어서 유창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볼땐 잘하던데.ㅋㅋ 어쩌면 내 귀가 비정상일지도..

약 한 시간정도 올라갔을까.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전혀 분간히 되지 않는다. 덕분에 오히려 덜 힘들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마띠가 조금 쉬어가자고 한다. 솔직히 오르는 내내 언제 쉬나 궁금하긴 했었다. 출발 하기 전부터 이 산의 정상까지 여섯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기에 지레 겁을 먹었고, 한번 쉬긴 쉬어야 할텐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서도..가이드가 어린 여자아해다 보니..알량한 자존심이 발동하기도 하고..그런데 마띠가 쉬어가자고 하니 정말 땡큐다. 가방에서 초코바를 꺼내서 나에게 건내주는 마띠.

처음 봤을때부터 궁금했었다. 가방 안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걸까..쉬어가는 김에 물어보니 마띠가 말하길 커피와 뜨거운 물 그리고 비상식량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단다. 모두 다 나를 위한 것들이겠지..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는건데..내가 들겠다는 말은 왜 단 한번이라도 꺼내지 못한 걸까..

매번 쉬는 순간마다 마띠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물어보았다. 그러다가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라는 조금은 민감한 질문을 해본다. 왠지 대답을 알것 같았지만 확인을 해보고 싶기도 했었을까..

그녀가 말하기를 그녀는 단순히 취미라고 말을 한다. 정말 취미라면 다행이겠지만..그녀는 거의 1주일에 세 번은 이 산을 오른다고 하는데..정말 취미려나??

그녀에게 영어는 어디에서 배웠는지 물어보니 그녀는 자신의 마을에서 오토바이로 두 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학교가 멀긴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에 비하면 그런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하던 그녀.

다시 쉬어 갈 무렵. 우리 뒤에 출발했던 다른 일행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그들과 함께 온 가이드 또한 마띠와 같은 마을 출신의 사람들. 거의 모두가 친척뻘되는 사이란다. 어느새 트래킹 코스는 화산지대로 들어서서 더 이상 초목은 보이지 않고 급격한 경사의 암반지대만 있을 뿐이다. 아직까지 어두운 하늘 덕분에 역시나 거리는 가늠할 수가 없구나. 암반지대를 오르는 길은 위험하지만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잠깐 고개를 들어하늘을 올려다 보면 머리위에선 별들이 쏟아지고, 뒤로 돌아 앉아서 지상을 내려다 보면 도시의 불빛들이 또 다른 별천지를 만들고 있다.


정상에 다다를 수록 점점 쉬어가는 횟수가 많아진다. 마띠는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고, 우리는 체력보충이 필요하니 자꾸 간식을 먹어야 한다며 나에게 자꾸 과자와 초코바를 건넨다. 자꾸 받아먹기가 미안해진 나는 예전에 발대식 할때 씨즈에서 챙겨줬었던 과자들을 안먹고 이번 여행때 혹시 몰라 가지고 왔었는데, 한국 과자라며 그녀에게 건네준다. 다행히 맛이 괜찮은지 그녀는 과자를 맛있게 먹고 enak sekali~(정말 맛있어요~)라고 외쳐되더라. 진형님 그때 챙겨주셨던 과자들 이렇게 유익하게 썼네요 ㅋㅋ

올라가는 순간순간은 정말 더워서 몸에서 땀이 흐를 것 같은데, 조금만 앉아서 쉬어도 금방 체온이 내려가는게 느껴질 정도로 춥다. 한 여름임에도 불구하고..정말 춥구나. 하긴 현재 발리섬의 경우에는 특별한 계절이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기에다가 우리로 치면 겨울정도 된다고 하니. 그래도 정말 이정도로 추울줄은 상상도 못했단 말이지.

새벽 다섯 시 반 정도 되었을까..결국 산의 정상에 올랐다.
마띠는 나에게 축하한다고 외치고, 우리는 신나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뒤따라 온 다른 사람들에게도 서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정상의 바람은 정말 칼바람 같더라. 저 멀리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게 보이긴 하지만 너무 춥다. 정상에 오른 우리들은 바위가 바람을 가려주는 틈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서 앉아서 가지고 온 과자와 음료를 나누며 일출을 기다린다. 마띠가 나를 위해 커피와 과자를 자꾸 건네준다. 아무리 내가 돈을 내고 온거지만..차라리 내 가이드가 내 또래 혹은 니보다 나이가 많거나 어린 건장한 남자였다면 모를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녀가 가지고 온 그 고생을 생각해서라도 과자 한 조각 커피 한 모금을 소중하게 마신다.

아까 트래킹을 할때는 모두들 힘들어서 일까 여행자들 끼리는 별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모두 함께 목표를 이뤘다는 기쁨에서 일까 아까보다는 밝고 쾌활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유쾌하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을 가진 미국 남자.
그와 함께 올라온 유럽 패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깔끔하게 생겼지만 골초인 독일 남자.
나이가 상당히 지긋해 보이시는 독일 출신의 할줌마.
그리고 말수는 적지만 사진찍기를 좋아하는 서양 여자 한명과 그녀와 함께 온 동남아의 부잣집 느낌이 나는 동양여자 한명.

이 날 함께 아궁산의 일출을  맛본 외국인들은 이정도 였을거야.

어느새 동쪽하늘은 조금씩 밝아온다.
아궁산의 일출은 정말 운이 좋으면,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로 발리와 그 옆 섬인 롬복까지 모두가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일까. 산 밑으로 깔려있는 구름들 때문에 도저히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너무너무너무 깨끗한 하늘 보다는, 구름이 함께하는 그런 하늘이 좋다는 생각.


함께 떠오르는 해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역시나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미미한 존재 일뿐.

모두 함께 성공했다는 그런 공감대가 형성이 되서 일까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아까 자유로운 영혼의 미국아저씨가 자신의 가이드에게 묻더라.

왜 가이드일을 하느냐고.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하길. 이 일이 자기 마을사람들에게는 밥줄이란다.
아궁산을 오르는 길은 두 곳이 있고, 그 두 곳에 있는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가이드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고 한다.
내가 마띠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순수하게 취미라고 했었지만, 역시나 조금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마띠 또한 자존심 때문에 그런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쭉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띠가 내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나도 마띠의 사진을 찍어준다.
나중에 보니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이 없더라.
나의 길잡이자 말동무이자 든든한 동반자 였었는데.


이제 일출 감상을 끝내고 돌아내려오는 길.
올라올때는 어두워서 몰랐었는데 내려가는 길이 눈에 다 보이지 정말 막막하다.
거의 70도 정도 되는 경사를 거꾸로 내려가려니 사람들이 미끌어지고 장난이 아니구나.

특히 아까는 말이 없으시던 독일 할줌마가 이제는 마음이 열리셨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그 할줌마는 계속해서 미끌어지시면서도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거셨는데, 그분은 관광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라고 본인 입으론 말씀하시는데 정보력이 정말 장난이 아니셨다.

우리가 공정여행과 커뮤니티 투어리즘에 관련된 곳들을 탐방하고 조사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니, 발리의 곳곳에 있는 많은 업체들을 말씀해주시더라. 이곳 사람들 조차 잘 모르던 J.E.D까지 알고 계시던 그분.

순수하게 그분은 그런 현지체험이 관심이 있어서 조사를 하셨다고 하는데..정말 대단한 정보력이셨어.
나중에 내려가면 나에게 대나무를 보존하기 위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을 알려준다고 하시며 우리의 심도 있는 대화는 끝.


내리막 길을 걷는 내내 나의 배는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마도..한밤중에 먹은 수많은 초코바와 과자들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은데..
처음에는 참을만 했다. 하지만 화장실은 아까 출발했던 입구에만 보이고 거기까지는 약 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 참아보자..하면서 한시간 정도는 잘 참았다.

근데..아 정말 터질것 같은거야..

하지만 이 곳은 발리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아궁 산이 아닌가.
어떻게 외지에서 온 나따위가 이 신성한 곳에..응가를..그것도 물응가를 할 수 있겠어..
근데 정말 죽을 것 같은거야.

그래서 조용히 마띠에게 말했지.
"마띠..혹시 근처에 화장실 없어?? 내 배가 터질것 같아.."

그러자 마띠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더라.
"이 전체가 다 화장실인데요 뭘!!"

내가 너무 오바했나보다.

방출의 후련함으로 힘을 얻은 나는 마띠와 함께 다시 신나게 내려가기 시작한다.

가는 내내 미끄러우니 마띠가 나에게 계속하던 말.

Kita jalan hati-hati !! 읽으면 "끼따 잘란 하띠하띠" 뜻은 "조심히 가자!!" 이런 말인데, 그나마 트래킹을 하는 사람중에 우리가 제일 어려서 일까 엄청난 스피드로 서로 깔깔 거리면서 산을 내려왔었지.
자꾸 끼따 잘란 하띠하띠라고 외치면서 말이야.

하지만 나도 어느새 이십대 중반에 다가서서 일까 무릎에 슬슬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라.
도저히 안되겠어서 마띠에게 잠깐 쉬어가자고 말을 한뒤 앉아서 쉬는 동안 신발끈을 고쳐메고 있었다.
마띠가 내 신발을 보더니 정말 좋은 신발이라고 칭찬을 하더라.
내가 마띠의 신발을 보며 너의 신발도 좋은 신발이냐고 묻자 신발을 벗어서 보여주는데..

거의 3cm 큰 신발을 신고 이 산을 오른 거였다.
자신의 신발도 없이 오빠가 쓰던 신발을 신고 이 산에 오른단다. 아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마음 같아서는 내 트래킹화를 그녀에게 주고 싶었어. 물론 사이즈도 맞지 않았겠지만..동정심?? 이런것 보다는 뭔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고민고민 하다가 그녀가 두시간 걸려 학교를 다니던게 생각이나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팀이 인도네시아에 갔을때 아이들에게 주려고 챙겼던 연필들이 있었는데 그걸 그녀에게 주었다.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어느새 새벽에 출발했었던 우리의 출발지 빠사르 아궁 사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계단 밑으로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드라이버 마띠의 모습도 보이기에 나는 외쳤지.

I survive~!! 그러자 그는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올려주더라.

마띠와 신나게 마지막 길인 300계단을 신나게 걸어내려간다.
마띠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 계단 이름은 '300계단' 이라고 가르쳐 주길래 혹시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었더니..
"그냥 계단 숫자가 300개에요^^"

홍근. 너무 많은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좀 말자 ㅋㅋ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마띠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마띠. 정말 고마웠어. 너의 그 쾌활함과 순수함 그리고 학업에 대한 열정들 모두 시들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어.

마띠와 악수를 나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악수를 하고 나서 가슴에 손을 댄다.
단순히 손을 잡아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겠다는 뜻.

Suksma 마띠!! (이날 마띠에게 배웠던 발리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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