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이번에는 이탈리아 인류학자 스테파노와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는 로마출신의 전직(!?)스콰터이자 학자로서,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까지 이어졌던 자신의 스쾃 경험에 덧붙여 이탈리아만의 특징적인 스쾃에 대한 역사적 이유, 정치경제적 상황 등을 아우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공유하고자 전문을 옮긴다.

 


 

 

Q. 로마에는 왜 이렇게 많은 스쾃 공간이 있으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A.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내가 이해하기로 1990년대 초에 아주 큰 스쾃운동이 일어났었다. 그 당시 나는 16살이었고, 나도 내 친구들도 누구나 스쾃을 했었다. 한 명 당 적어도 2개 이상의 공간을 스쾃했고 대안공간도 많이 탄생했다. 이런 공간운동 저변에는 좌파진영의 도움을 받는 곳들도 있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아니었고 비공식적으로, '우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스콰터가 정당 당원이기도 하면서 정당과 대안공간이 상호지지를 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어떤 정당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던가 하는 류의 뒷배가 없는 스쾃 공간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들은 점점 줄어갔다.

 

여러분은 스쾃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로마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거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제공하는 류의 사회주택이 거의 없다는 걸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몇십년간 새로운 사회주택이 지어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주택을 필요로 했지만 정부는 이들을 위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로마에는 빈 건물을 스쾃하고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하는 거대한 스쾃연합이 만들어졌고, 시의회는 그들이 하는 바를 내버려두었다. 그것이 집없는 사람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는 방편이었고, 시의회로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매우 영리한 짓이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두고 벌이는 계속되는 정치게임이다

 

당신이 집에 대한 권리가 있다면 누구도 당신이 살고 있는 것에 간섭할 수 없다. 하지만 스쾃을 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쫓겨날 위험이 있고 물이나 전기 문제, 시의회에서 공식적인 거주허가증을 내주지 않아서 아이들이 학교를 가거나 병원에도 갈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이민과 관련된 것이다. 서유럽은 1970년대부터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이민자가 많이 몰려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도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이탈리아사람들은 늘 다른 곳으로 이민 가곤 하는 나라였고 지금도 물론 이민을 많이 가지만, 이제는 다른나라에서 이민을 많이 오기도 하는 곳이 되었다. 이것은 20년내에 생긴 새로운 현상이다. 많은 이민자들이 허가없이, 일정한 주거지 없이 몰려든다. 이런 사람들은 집에 살 권리가 없어서 점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민자들을 위한 주거정책을 내 놓을 경우 이전에 혜택을 받지 못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특혜라고 반발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하다보니 어떤 스쾃공간들과는 시정부에서 나서서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머물 수 있고, 불을 켤 수 있고. 이런 식의 조항을 넣어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1년까지 이런 식의 협의접을 맺기 시작했지만 이는 불완전한 정책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에서 다른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퇴거의 위협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퇴거위협에 맞서 많은 데모들이 일어났다. 어떤 점거공간들은 매우 커서 공권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쫓아내기 힘들다. 예를 들어 포르테 프레네스티노 같은 곳은 강제퇴거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곳이다. 여기는 과거 군사요새였기에, 헬리콥터를 타지 않는 이상은 안에서 저항하면 침임해서 들어가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그 외에 퇴거조치를 취하기 쉬운 곳들은 다른 종류의 합의를 맺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정부에 돈을 내기도 한다.

 

 

Q. 그렇다면 그 공간의 실제 소유주들은 누구인가?

A. 일반적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점거는 대중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공공의 소유지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의 경우도 군부대에 속한 방치된 요새였다. 로마 주변에는 19세기에 지어진 군사요새 중에 더 이상 쓰이지 않고 버려진 곳들이 많이 있었고, 포르테 프레네스티노는 그곳들 중 한 곳이었다. 군부대는 딱히 이 공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관리하기도 어렵다보니 그냥 두는 것이다.

시네마 팔라쪼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거기는 사유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도 어떤 회사(아마도 마피아 소유의) 소유이고 법정 소송이 5년째 계류된 상태이며, 공간사용에 대한 일시적인 권한만 가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카페 앞 거리에만 5개의 점거 공간이 있다. 그래서 이 거리는 로마 내 저항과 관련해서는 가장 중요한 거리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초 이곳에는 공동체 라디오, 자율주의 공산당들의 거리였다. 혁명적 정치적 그룹의 수뇌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이를 중심으로 많은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라디오 온다로사(레드 웨이브)이다. 이는 30년 이상 여기에 있으며, 로마에서 스쾃운동을 하는 이들이 모두들 듣는 라디오이다. 그들은 어디서 퇴거조치가 일어나고 있으며 데모가 일어나고, 저항하고 있는지를 알린다.

 

라디오 온다로사  RADIO ONDAROSSA

씨네마 팔라쪼 근처에서 팔레스트라 포폴라레라는 체육관을 보았을 것이다. 거기도 스쾃한 공간이다. 내 딸과 아들도 거기 가서 쿵푸나 클라이밍을 배운다. 이곳 이웃들이 많이들 사용하는 곳이다. 시네마 팔라쪼에서는 콘서트, 연극공연, 문화적 활동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 길을 따라 가다가 보면 왼쪽에서 또 다른 소셜센터를 볼 수 있다. ‘ESC'라는. 그곳에서는 보다 정치적인 모임이나 독서토론, 정치적 토론 등이 일어난다. 물론 이는 로마 전역의 일은 아니고 산 로렌조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곳에서 15개 이상의 서로 다른 점거 공간들이 있다. 정치 토론을 활발히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저 파티만 하는 곳도 있고, 좀 더 아나키스트적인 곳도 있고, 프로파간다적인 곳도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르고 이것을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산로렌조의 상황이다.

팔레스트라 포폴라레

 

Q. 당신이 이런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나?

A. 나는 로마에서 태어났다. 16살에 또래들과 함께 처음 스쾃을 했고, 우리는 폐쇄된 공간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청소하고 그곳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여러 활동이나 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정치정당이 이곳을 운영하고 싶어해서 우릴 쫓아냈다. 우린 경찰이 아니라 동료들에게 쫓겨난 셈이다. 21살에는 로마를 떠나 바르셀로나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도 스쾃을 해서 나의 집을 꾸렸다. 관심있을지 모르겠지잔 바르셀로나엔 사유지에 점거가 훨씬 많다. 그들은 좀 더 용감하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공공건물을 스쾃하면 바로 쫓겨난다. 오히려 사유지 점거가 좀 더 쉽다. 바르셀로나는 버려진 사유지가 많다. 물론 절대로 누군가 살고 있거나 사용하고 있는 공간을 점거해선 안 된다. 누군가 휴가를 가서 비워진 집도 점거하는 것은 안 되고.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친구 몇과 스쾃을 하고 살았다. 어떤 조직이나 정당과 무관하게 우리 스스로 그렇게 6년 살았는데,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나서 로마로 돌아왔는데 그 후론 스쾃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2명 생겼고 좋은 직업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상 스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쾃을 하는 이들을 존중한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고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Q. 로마에서의 스쾃은 어떤 정치적 저항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그저 돈의 문제인가?

A. 내 생각에 스쾃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놓인 이들인 것 같다. 예컨대 이민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엘리트 자녀들 중에서도 '이상',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참여하는 이들이 있다. 이 둘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아주 유명한 정치적 지도자도 있을 정도로 매우 다양하다. 나 또한 인텔리전트의 아들이다. 물론 나 같은 경우에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스쾃팅은 사회에 어떤 연결들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계급해방을 이루는 혁명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학생들이나 동료집단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움직임이기도 하다. 이것이 스콰팅에을 규정하는 데 있어 문제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우파진영에서 스쾃터들은 그저 혁명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조롱하면서 스쾃을 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빌미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일들이 종종 발견된다. 스쾃터 중에는 응당 치러야할 세금이라던가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지불하지 않고 공간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이러한 사례를 들어 스쾃운동 전반을 비하하기도 한다. 우리 또한 이러한 덫에 걸리기 쉽다. 20-30년 전에 비해 스쾃운동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큰 문제이다.

 

 

Q. 더 이상 사람들이 스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인가? 젊은 시대의 스쾃활동은 어떠한가?

A. 이건 관심과는 다른 문제라 보여진다. 아까 말했다시피 1990년대는 스쾃운동의 황금기였다. 이탈리아 뿐 아니라 스페인, 네덜란드,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말 즈음에 주택임대난이 큰 문제였고, 버려진 폐공장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고 1989년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독이 통째로 비게 되었다. 많은 집들, 공장들이 완전히 버려졌고, 국가에서는 이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가 좋다는 걸 선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에서는 복지라던가 빈집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1980년대 전유럽은 반문화운동이 한창이었다. 펑크라던가 많은 음악과 예술들이 그 버려진 공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화적 씬들이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 강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모든 장소에서 함께 진행된 것이 스쾃팅이었다. 모든 테크노 씬, 레이브씬은 스쾃공간에서 일어났다. 누구도 장소를 임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런던에도 수많은 스쾃팅 공간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이런 파티가 일어났다. 1990년대 초에 헤크네라던가 브릭스턴같은 산업지대에 수많은 버려진 공장에서 목요일 오후면 200명의 사람들이 그 공간을 스쾃하고 파티를 시작했고, 월요일 아침까지 2000여명이 몰려들었다. 매우 강한 문화적 씬이 펼쳐졌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 사람들도 늙어버렸다. 음악이라던가 예술 씬에서 더 이상 스쾃팅이 일어나지 않는다. TRAP과 같은 음악은 이제 누구도 듣지 않는다. 16, 17살에 아방가르드 했던 사람들이 이젠 40대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젊은 스쾃터들도 있지만 그때만큼 많지는 않다. 이게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1991년 포르테 프레네스티노에서는 스쾃공간에서 언제나 흘러나왔던 아쌀티 프롬 더 이탈리라는 밴드의 LP 레코드가 자체제작되었다. 이것은 상징적이었다. 이 앨범은 스쾃공간에서 제작되었고, 스쾃 공간에서만 판매되었으며 그들의 가사는 모두 우리는 스쾃을 하고 싶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이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류 레이블에서 제작되지 않았음에도 당시 차트 상위권에 진입하였다. 레코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DO NOT PAY MORE THAN" 이는 매우 분명하게 반자본주의적이고 매우 아방가르드한 대안음악이었다. 이는 1990년대 초 이탈리아의 랩 음악이었고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현재 이 밴드는 여전히 30년 전의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다. 물론 좋은 음악이지만, 젊은 세대에게 이는 더 이상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가 계속해서 스쾃팅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오지는 않았다. 있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그래서 나처럼 40대 이상이 이런 공간들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네마 팔라쪼의 화요일 집회에 가게 되면 한 두명의 25~30살 정도 된 젊은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패트릭 나이(60대 이상) 또래들이 대다수이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 대응 촉구 집회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어린 세대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학교에 가지 않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집회를 벌인다. 현재는 스웨덴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금요일마다 학교를 파업하고 13~20살의 학생들이 광장에 모여 기후정의실현을 위한 집회를 벌인다. 이들은 스쾃 공간에서는 볼 수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스쾃 공간과 연계한 어떤 활동을 하는 이들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어떤 스쾃 공간들은 운영자들에 의해 어느정도 폐쇄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스쾃 공간에서도 많은 것들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일들이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다. 요사이 스쾃 공간들을 가 보면 30살 이하로는 보기 힘들다. 내가 16살에 스쾃을 시작했던 걸 떠 올려보면, 지금 그 세대는 스쾃 공간이 아닌 광장에 있는 것 같다.

 

 

 


 

 

 

스쾃 공간의 안과 밖에 있는, 입장이 다른 두 인터뷰이들을 만나며 이날의 집중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인터뷰를 마치자 스테파노는, (차를 타고 좀 이동해야하긴 하지만) '스니아'라는 곳과 행사를 소개해주고 싶다며 제안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계속해서 뜻과 인연이 이어지는 터라 어안이 벙벙한 채로 신나게 가겠다!고 소리치며 이동했다.

 

 

다음 편에 계속!

Posted by seekers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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