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가 시부야… 꿀벌과의 달콤한 동거

ㆍ일본 ‘시부야328’의 도심 양봉 프로젝트… 인간·환경·상권의 공생이 주는 꿀맛

2013.8.23


“윙~ 윙~ 윙~” 

지구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곤충으로 불리는 꿀벌들은 나무와 꽃을 바삐 옮겨다녔다. 한낮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찜통 날씨였다. 지난 12일 일본 도쿄 시부야 사쿠라가오카(벚꽃의 언덕) 길의 한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국내 청년 사회적기업 ‘비틀에코’ 사람들이 동행했다. ‘시부야’ 하면 흔히 떠올리는 스크램블 교차로가 2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복잡한 도심이지만, 이 옥상은 주변 건물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지역시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 ‘시부야328’이 양봉사업을 하는 터였다.

6층 건물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자 수십마리의 꿀벌들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 놓인 노란색 벌통 주변으로는 경계벌들이 늘어서 여왕벌이 있는 집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향기를 맡아서인지 꿀벌들은 평소보다 예민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사납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200여㎡(60여평)의 옥상 곳곳에는 레몬나무, 연꽃, 라벤더, 포도나무들이 있었다. 이 식물들은 벌이 꽃에서 꿀을 얻는 밀원이 되고 있다.

 

▶시부야 사쿠라가오카 길의 한 건물 옥상에 노란색 벌통들이 놓여 있다.

벌통에서 막 꺼낸 진갈색의 벌집에 벌들이 빽빽히 모여 있다.

 

■ 8년전 도시 열섬현상 고민에서 시작한 양봉 프로젝트

사토 마사루 시부야328 대표(52)는 창고에 들어가 흰 가운과 망사 모자로 온몸을 무장하고 나왔다. 일주일에 2차례 이상 옥상에 올라와 벌통을 확인한다고 한다. 그가 연기를 피우고 벌통의 뚜껑을 조심스레 들어올리자 진갈색 꿀을 머금은 벌집의 모습이 드러났다. 옥상에는 벌통이 5개 있었다. 벌통 1개당 4만마리가 들어있으니 20만마리의 꿀벌이 사는 셈이다. 농촌에서는 적어도 8만마리의 벌들을 한 벌통에 키우지만 도심 양봉 환경을 고려하면 4만마리가 적당하다는 계산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꿀은 빵과 푸딩의 재료로 활용되고 밀랍으로는 양초를 만든다. 주변에도 양봉을 하는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시부야328의 양봉 프로젝트는 2006년 시작돼 올해로 8년째다. 사쿠라가오카 길의 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토 마사루는 시부야의 열섬현상을 심각하게 느꼈다. 더운 날씨에 작은 에어컨을 샀다가 점점 더 더워지자 큰 에어컨으로 바꾸는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마을에선 벌이 사라졌다. 일본 전체가 그랬다. 벌집군집붕괴현상(CCD), 농약, 지구온난화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중국에서 들여온 값싼 꿀이 일본에 유통되면서 일본 양봉업자 수도 계속 줄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던 사토 마사루가 시부야에서도 양봉을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앞서 양봉을 진행하고 있는 도쿄의 긴자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길가에는 벚나무를 심고,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하는 그림이었다.

 

▶사토 마사루 대표가 벌집을 꺼내 보고 있다.

 

프로젝트에는 시부야의 상인회장과 지역주민 30여명이 적극 동참했다. 이름은 시부야328로 지었다. 3(미쯔)은 꿀이라는 뜻도 함께 지니고, 2는 사람 인(人)의 획수, 8(하찌)는 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꿀이 나오는 꽃과 벌을 인간이 엮어주자는 뜻이다. 

사토 대표는 “자연을 도심속에 확산시켜 열섬현상을 막고 인간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태양을 받고 자라는 꽃, 그 꽃을 먹는 벌, 벌이 만드는 꿀, 그 꿀을 먹는 사람까지 자연은 연결돼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양봉사업은 정부 지원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 도쿄도와 협의해 벚나무 등 밀원이 될 가로수부터 심어

이들은 먼저 사쿠라가오카 길의 가로수를 정비했다. 소나무·은행나무같이 한국의 길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수는 벌이 꿀을 채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쿄도의 환경건설위원회는 도심 양봉을 위해 시부야에 밀원이 될 수 있는 나무를 심기로 결정했다. 사쿠라가오카 길에는 36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졌다. 나무마다 달려 있는 쪽지들에 눈이 갔다. 쪽지에는 2010년 심을 당시 1m 정도였던 벚나무가 1년마다 얼마나 자랐는지 측정한 기록이 적혀 있고, 나무를 심은 시민 사진이 함께 들어 있었다. 사토 대표는 “벌이 벚꽃에서 꿀을 취하고 난 뒤 버찌가 남으면 그걸 새가 먹는다. 인간과 벌, 새까지 공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부야328은 이 벚나무 가로수를 인근 다이칸야마와 에비스 지역까지 이어갈 계획이다. 사쿠라가오카 길에서는 매년 봄 벚꽃축제가 열리고 ‘328’의 숫자에 어울리는 3월28일에는 꿀을 채취하는 특별 이벤트가 열린다.

양봉은 처음 시작할 때 지역주민들에게 비밀에 부쳤다. 벌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양봉한다고 알려봤자 좋을 게 없을 듯해서였다. 처음 꿀을 채취해 주민들에게 주면서 양봉한다고 밝히는 자리에서 걱정과 달리 주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건물 주인들도 양봉을 계속 허락해줬다. 양봉을 시작한 뒤 벌에게 쏘인 주민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벌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도 해소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옥상에 학생들이 견학오면서 자연스럽게 생태교육도 진행되고 있다. 

시부야의 양봉사업에는 몇 가지 내려오는 룰이 있다. 설탕을 주지 않고, 벌의 수를 너무 많이 늘려 벌들에게 영역 간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깊은 맛이 나오도록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꿀을 채취하는 것이다. 시부야328에서 이렇게 생산된 꿀의 가격은 35g에 1만2000원(1050엔)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꿀보다 훨씬 비싸다.

 

▶사토 마사루 대표가 시부야328에서 생산한 꿀을 소개하고 있다.

 

■ 인근 카페에 생산 꿀 판매… 지역 상점과 협력 시너지

시부야328은 지역 상점과 협력해 시너지 효과도 일으키고 있다. 사쿠라가오카 길에 있는 벨 마레 카페에서는 시부야328이 생산한 꿀이 들어간 제품을 팔고 있다. 기즈 요시유키 벨 마레 카페 2호점 사장(39)은 “카페의 간판 메뉴인 호박 푸딩에 캐러멜 시럽을 뿌렸었다”며 “손님 한 명이 캐러멜 대신 꿀을 뿌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사토 대표로부터 친환경 꿀을 공급받아 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꿀에 의해 푸딩의 맛이 죽어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꿀을 넣어야 맛있을지 손님들이 수차례 시식을 하도록 해본 뒤에 지금의 꿀호박 푸딩이 나왔다”며 “손님들이 ‘시부야에서 나온 꿀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벨 마레 카페 2호점에서는 꿀을 이용한 다른 메뉴도 개발 중이다. 기즈 사장은 “아직 시부야 시민들이 모두 양봉 프로젝트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들에게 시부야의 사람들은 자연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카페에 와서 꿀 제품을 먹어본 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부야328과 유사한 형태의 양봉사업은 일본의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2006년부터 양봉을 시작한 긴자프로젝트는 금세 유명세를 타 “꿀벌을 살리자”는 오페라와 연극도 나왔다. 긴자에서 생산된 벌꿀을 파는 전문판매점이 따로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 현재 시부야의 고쿠렌 대학이나 농림수산성에서는 양봉프로젝트를 교육·홍보하고 있고, 고쿠렌 대학의 꿀벌연구소는 1년에 2~3차례 포럼도 열고 있다.

 

▶일본 도쿄의 시부야를 찾은 청년 사회적기업 ‘비틀에코’ 한이곤 대표(왼쪽)와 직원들이 시부야328 티셔츠를 몸에 대보고 있다.

 

한국에서도 도심 양봉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비틀에코는 강원 춘천에서 도심 양봉과 옥상정원 사업을 축으로 한 ‘달짝지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서울에서도 지난해 서울시청 옥상에서 양봉이 시작됐고, 올해 7곳으로 늘어났다.

도심 양봉이 환경 보호에도 과연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아직 물음표가 달려 있다. 사토 대표는 “결론적으로 도심 양봉을 해서 생태계가 복원된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마리의 꿀벌이 30일간 바짝 일해야 티스푼 하나 분량의 꿀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이 꿀을 먹으면서 꿀벌이 엄청나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알고, 한 번 정도 생태계를 생각해보고, 그 다음에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장 우선할 것은 벌꿀의 가치를 알자는 것이죠.” 양봉과 생태를 그렇게 연결지은 사토 대표의 시선은 연꽃에 붙어 있는 한 마리의 벌을 향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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